9/14 금 맑음
우리방에 묵는 일본애들 중 하나는 중국애였는데, 티벳에서 6일 걸려 히치로 중띠엔까지
왔단다. 영어도 잘 못하고 꼬질꼬질한 녀석인데, 나더러 루구후에 같이 가잔다.
웬지 믿음이 가지 않아 대답을 대충하고 리장행 버스를 타러 갔다.2분 늦게 가서 10시 차를 놓쳐서 11시 40분차로 사 놓고 전화를 하고 엽서를 부쳐도 겨우 40분이 갔다. 돌아다니다 보니 눈이 너무 부셔서 선글래스를 찾으니 아무리 찾아도 없다.호텔에 두고 온줄 알고 3번버스를 타고 호텔로 갔으나 거기에도 없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일본애,중국애들과 다시 작별의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오르자 마자 중국여자와 대판 싸우다.
창문 때문이다. 이 여자가 자기자리 창문은 두고 내 옆의 창문을 자꾸 연다. 첨에는 웃으며 내가 닫았는데, 또 뻔뻔스럽게 열길래 내가 지랄지랄하고, 어떤 젊은이의 중재로(일방적으로 내편, 아니 옳은 편을 들어서) 싸움은 끝났는데, 나보고 이해 하란다. 이번엔 어린 라마승이 내게와서 자꾸 돈을 달라는데 내가 거절을 하며 곤란해 하자 아까 그 젊은이가 냅다 그 어린 승려의 따귀를 갈긴다. 민망, 민망, 녀석은 버스에서 내려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고...결국 내가 10원을 주니 그제서야 빙긋 웃으며 합장을 한다.
호도협에 장이 섰는데, 어디서 그 많은 인파가 나왔는지, 말 그대로 인산인해다.
졸면서 한참 가니 이번에 차들이 가득 밀려있다. 아마 교통사고가 난 듯. 차는 갑자기 우리가 가는 강안 반대편으로 차를 돌려 냅다 달린다.리지앙 터미널에 오니 샹그리라 애가 다시 웃으며 반긴다. 녀석과 집으로 가면서 사과 하나를 내 손에 슬며시 쥐여주며 얼굴을 붉힌다. 괜찮다고 사양해도 막무가내. 다 먹나니 다시 한 알 더.
저녁식사가 푸짐하다. 아줌마는 나를 위해 전에 맛있다고 했던 샐러리 볶음을 따로 준비한다. 곤명에서 온 중국인들과 일본애 하나. 말을 더듬는데 영어는 꽤 유창. 무슨 모바일 폰 회사에 다닌다는데, 보아하니 짤린 모양이다.
밤에 꼬치 생각이 나서 사방가를 나갔다가 사쿠라에 가니 스테판김과 강사장이 있다가 반갑게 맞는다. 강사장은 60대 초반인데, 건설회사가 하도 지랄같아서 휴업계를 내고 왔다는데, 김대중이 욕하는 수준이 나 이상이다. 베트남 여자를 하나 사서 6개월동안 베트남 전역을 돌아다녔다는 얘길 자랑삼아 지껄이는데, 더는 못들어 줄것같아서 나와버리다.
집으로 전화를 하니 주식은 폭락장세이고, 3차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며 호들갑이다.
이제 거지 될 날도 머지 안았군...미국 증시는 일시 폐장.
내일이 무섭다.
9/15 토 맑음
아침일찍 아줌마가 만들어준 국수를 먹고 일하는 애를 따라 루구호행 버스를 타러 나서다.
숙박비를 줘도 한사코 받지 않고 오히려 나시족 공예품을 하나 사서 쥐여 준다.
이런게 정이라는건가?다시 리지앙으로 돌아온다고 했지만 그들을 만나기는 좀 부담스럽다.
미니버스로 닝랑으로 향하는데, 장난이 아닌 길이다.평평한 돌을 심어서 포장한 길로 버스는 덜컥대며 가는데, 까마득한 길 아래 금사강은 급류가 흐르고, 경사진 길을 돌고 돌아서 내려오는데, 오금이 저려 차라리 눈을 감고 있는게 낫다. 한참을 달리던 차가 기어이 섰다.
차 밑으로 들어간 녀석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급기야 신혼여행가는 한 쌍은 차를 버리고 다른 차를 기다리면서 나보고도 다른차를 타고 가잔다. 그러고 싶어도 이미 낸 차비가 아까와서도 곤란하지...다른차가 와서 그사람들을 비롯해 몇 명이 갈아타길래 나도 배낭을 끌어내리니까, 운전사가 다 되었고 괜찮으니 그냥 가잔다. 20원을 아끼면서 모험을 하기로 하고 도로 차에 올라 앉으니 차장이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이라니까 왜 루구호에 가느냐고 묻는다. “놀러간다” 나의 현답이었고 그들은 더 이상 나를 귀찮게하지 않았다.
이럭저럭 닝랑에 도착하고 보니 루구행 차가 1시간 후에 간단다. 매표소에 짐을 맡기고 볶음밥을 먹고 가게에서 물을 살려니 3원이란다! 아무리 2원 하자고 해도 막무가내.
할 수 없지. 맥주는 큰병 하나에 1.5원이고, 물은 3원이라,,, 유럽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었지. 차가 루구호를 향해 6km쯤 달렸는데, 줄지어 서있다. 또 교통사고인가 하고 내려서 봤더니 목하 산사태 진행중...몇십톤의 흙이 아무런 이유없이(이유야 없겠냐마는) 아래로 줄줄 흘러 내린다. 꼼짝없이 닝랑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이윽고 사태가 좀 진정되자 건너쪽에서 사람들이 조심조심 이쪽으로 온다. 우리차 운전자에게 어떤 여자가 다가와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우리더러 건너가잔다. 배낭을 메고 겁먹는 나를 보더니 대뜸 자기에게 건네 달란다. 그리고는 씩씩하게 건너간다.
부들부들 떨며 건너오는 날 보더니 재미가 있는모양이다.결국 그들은 서로 손님만 바꿔서 출발했던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셈이다. 우리가 첨 탔던 차는 다마스라면 갈아탄 차는 이스타나이다. 훨신 시트사이도 넓고 안락하다. 평지를 한참 달리던 차가 루구호를 향해 숨가쁘게 오르는데 비가 갑자기 장대처럼 쏟아진다. 온통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로막는가 싶으면 다시 하늘이 보이고 정상 부근까지 오자 원시림에 가까운 침엽수림이 울창해졌다.
루구호를 향해 내려가던 차를 전망대쪽에 세워주며 구경을 하라는데, 이럴 수가...
넓디 넓은 호수에 그림같은 섬, 그리고 호숫가의 넓은 풀밭. 얼하이는 여기에다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평균수심 50m에 해발고도 2,600m란다. 최대 수심은 96m!
천지만큼 높고 더 깊은 호수... 게다가 여인왕국의 전설이 서려 있는곳.
운전사의 권유로 자기가 묵는다는 숙소에 여장을 풀고 보니 샤워장이 없단다. 여긴 아무데도 샤워시설이 없고, 다만 동네 공용 목욕탕에 가야한단다. 운전사가 안내해서 옥수수 밭을 지나 목욕탕으로 가는데 호젓한 길을 가다 보니 묘한 감정. 32세라는데, 나는 45세쯤으로 봤다. 선한 눈빛에 나에 대해서 많은 흥미를 가진 듯.
내가 목욕 할 동안 기다리고 있길래 그녀 보고도 목욕을 권하고 주위를 돌아 다니니 몇백년은 묵은듯한 호두나무가 많이 있다. 밭은 모두 진흙으로 쌓아올린 담장으로 둘러져 있고,주로 고구마나 잡곡을 심는 듯 하다. 저녁을 먹는데 붕어수프를 비롯해서 반찬이 8가지나 된다.45도 짜리 백주를 하도 권해서 두어잔 마셨는데, 속에서 불이 난다.
다른 투숙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독한 술을 잘도 즐긴다. 내 옆방의 뚱뚱한 녀석과 운전사 아렇게 세명이서 모수오족 전통 공연을 보러갔는데, 이 여자가 내 입장료를 대신 내준다. 마당엔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피리소리에 맞춰서 젊은 남녀가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는데, 리지앙의 나시족 춤과도 많이 비슷한 듯.우리 관객들도 어울려서 같이 춤도 추고 남녀가 번갈아가며 화답하는 애절한 노래는 참으로 듣기 좋았다.
사회자가 각지에서 온 관객들에게 각각 자기 지방의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하자 그들은 광둥, 스촨, 대만 할것없이 잘도 부른다. 나는 결국 사양.
운전사와 둘이서 양구이, 버섯구이를 먹으러 갔는데, 그녀의 특별 주문 메뉴는 통째로 구운 개구리...우웩. 숙소로 돌아오는 어두운 길에서 그녀는 자꾸 가쁜 숨을 뱉으며 내게 밀착을 하는데, 나도 많은 혼란이 온다. 내가 제의만 하면 그냥 OK인데, 오입질 할려고 여행 다니는것도 아니고... 내 걸음걸이도 자꾸 휘청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