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메 2013. 4. 5. 15:54

 

9/18 화 맑음

6시반 곤명 도착. 스위스애들과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왔는데, 지도를 챙기지 않아 길이 헷갈린다.베이징루 쿤후반점. 여기로 가야겠다. 차화빈관은 걷기엔 무리.

쿤후반점가는 길에 하도 소변이 마려워 ·관화빈관‘이란곳에 가서 화장실을 물으니 친절히 안내해 주더니, 나오는 내게 자기호텔에 묵으란다. 얼마냐고 물으니, 300원이란다.

삼 배배백원? 나 돈 없어.

체크인을 하는데, 30원이란다. 분명히 밖의 플랭카드엔 20원이라고 씌여 있었는데.

그걸 따지니 지 혼자 뭐라고 중국어로 주절대면서 20원 주면 된단다. ·이년아, 내가 서양놈이냐? 나도 한자쯤은 다 읽는다.‘

방엔 덴마크 노인 하나와 일본애 가 하나가 있다. 뜻밖에도 덴마크 노인은 ·대전 스칸디나비안 호스피털‘에서 20개월동안 근무했다며, 막걸리, 오비맥주, 경주등에 대해 잘 안다.

일본애는 교토 애인데, 이모님댁과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다.(나중에 일년여 후 우리는 라오스 무앙싱에서 다시 만났다-이런게 인연인지...) 두 사람은 내일 징홍을 거쳐서 라오스로 간다는데, 둘 다 6개월째 여행중이란다. 샤워 후 아침으로 요우디엔을 먹고 거리에서 등려군 CD를 샀는데, 숙소에 와서 들어보니, 이게 VCD 이다. 또 잘못 봤다. 빙빙에게 전화를 하니 중국어로된 알아듣지 못하는 메시지만 나오고 메일을 확인했더니 윤은 다리에 있다고 한다.

스테판 김 말이 맞았다. 오늘은 그냥 게으름을 즐기기로 하고 왕빠에서 3시간을 버티며 뉴스도 보고 까페에 들어가서 안부도 전하고 하는데, 뉴스는 아예 미국 WTC와 FENTAGON

폭파 에 대해 도배를 했다. 물론 주가지수는 개판이었고...


9/19 수 흐림

느지막이 일어나 호텔옆의 조선족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데, 뜻밖에 윤을 만났다.

그는 이틀전에 곤명와서 역전 근처에 묵고 있단다. 그동안 감기걸려 고생한 얘기며 이런 저런 이야기 보따릴 풀기에 여념이 없다. 둘이서 시샨공위엔(西山公園

)으로 가기로 하고 관화빈관 옆에서 5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아 다시 물었더니 53번이란다. 쓰벌...

용문으로 가기위해 6원짜리 트롤리를 타고 공원에 들어섰는데, 또 사건이다.용문을 지나 얼마를 가니 아랫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한다. 화장실은 언감생심. 으슥한 곳을 찾으려 해도 온통 길 외엔 절벽. 겨우겨우 멀리 리프트 타는곳 옆의 화장실을 발견하고 조심조심(샐까봐) 걸음을 옮기는데,그야말로 몇 미터 앞두고 기어코 사건은 터져버렸다. 바짓 사이로 흘러내린 거시기가 팬티, 양말, 신발까지 칠갑을 하고  말았다.

온 몸엔 진땀이 흐르고 수습하려해도 뭘 어떡해얄지 그저 난감할 뿐이다. 바지 밑단은 지퍼를 열어 하프로 만들고,신발에 묻은건 낙엽으로 닦고맨발 차림으로 가게에 비닐 봉지를 얻으러 가니 봉투를 건네주면서 짓는 그들의 의미심장한 미소. “난 다 보았다”이거지...

윤이 곤란한 내 사정을 헤아렸음인지, 오늘은 그냥 돌아가잔다. 돌아오는 차비는 내가 지불했다. 왜? 미안하니까. 그래도 곤명의 메마른 공기가 고마울 따름. 호텔로 돌아오기도 전에 내 옷과 신발은 거의 다 말랐다. 샤워룸에 가서 이 더러운것들을 정리하고 나니 힘이 하나도 없다. 윤의 말인즉슨, 아침에 먹은 냉면이 문제였단다. 중국에서 자기도 몇 번 그런 경험이 있노라고, 다시는 그 집에 가지말라 이른다.

윤과함께 밤에 진비루(金壁路)로 나가서 위구르인의 꼬치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어디서 `Sanson" 하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오! 매튜가 활짝 웃으며 서있다.

어떻게 그 많은 인파 중에서 날 발견했을까? 세상이 정말 넓고도 좁다.

그는 현재 바오샨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네덜란드 친구와 오늘 곤명에 나왔단다.

매튜는 같이 온 친구를 먼저 보내고 우리와함께 많은 얘길 했는데, 녀석의 중국어 실력이 꽤 늘었다. 가게에서 담근 술을 글래스로 한 잔 반쯤 마셨는데, 나는 완전히 맛이 갔었나 보다. 아침에 윤을 만나 물어보니, 내가 거의 늘어져서 매튜에게 “야, 너 정말 빙빙 사랑하냐? 중국에 쌔고 쌘게 잘 생긴 여자인데 하필 뻐드렁니 빙빙을 좋아하는 이유가 뭐냐...?”

주정을 좀 부린 모양이다. 빙빙은 현재 라오스로 여행을 갔는데, 자기는 내년 초에 아일랜드로 돌아간단다. 매튜가 우릴 택시에 태워서 호텔에 내려주고 갔단다.


9/20 목 맑다 비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메슥거리고 영 죽을 맛이다. 엊저녁 투숙했던 홀랜드 계집애는 벌써 체크아웃하고 없다. 억지로 일어나 짐을 챙기는데, CDP의 이어폰이 없다. 분명 엊저녁 홀랜드 계집의 짓인 것 같은데, 걘 벌써 체크아웃 해버리고, 신고를 할려다 일이 복잡해 질것같아 그냥 석림행 버스에 몸을 맡겼다. 휴게소에서 하도 목이 말라 사과값을 물으니 눈 하나 깜짝않고 10원이란다. 이럴때 쓰는게 국산 욕이지. “예라이 망할년아...”

2시경 석림 도착. 가이드 대기실에 가서 해연을 찾으니 온통 난리다. 그중 영어 가이드가 와서 하는 말이 해연은 오늘 쉬는 날인데, 직원 숙소에 있으니 좀 기다리라더니 여기 저기 전화를 해댄다. 비는 무지하게 쏟아지는데, 저 멀리서 해연이 우산을 쓰고 나타났다.

2년만에 만나는 그녀는 한층 더 성숙한 모습이다. 게다가 사복을 입으니 더 예쁘다...

내 배낭을 자기가 어깨에 메려하면서 나더러 숙소로 가잔다. 4층의 끝방. 4명이 한 방에서 생활하는데, 소박하기 이를데 없다. 거울 쪼가리를 벽에 붙여두고, 낮은의자 넷, 이층침대, 나머지는 옷가방과 가지런히 세워 둔 책, 침대에 놓여진 인형...내 소식을 드고 자기들 나름대로 바쁘게 방안 정리를 한 흔적이 역력하다.

점심을 먹으러 다같이 나섰는데, 해연과 나는 서로의 언아ㅓ 장벽을 실감한다. 그나마 걸으면서는 필담도 되질 않으니... 그 새 비는 그치고-이곳의 날씨가 이렇다. 강한 햇빛, 메마른 공기, 비가 쏟아지다가 어느새 깨끗이 그치는 비- 식당에 들어서서 나보고 주문을 하란다.

내가 뭘 알아야 주문을 하지...어쨌거나 열심히 먹고 계산을 하려니 걱정 말란다.

알고보니 여긴 그들이 장부를 하면서 외상으로 먹는 집인 듯.

석림에 들어가자니까 좀 있다 가자면서 다시 숙소로 올라갔다.

으자를 한 개 더 가져 오더니, 같이 카드게임을 하잔다. 딴엔 열심히 가르쳐 주지만 나같은 돌이 룰을 마스터 하기엔 무리. 어쨌건 두 팀으로 나눠서 했는데, 해연과 내가 속한 팀이 이겼다고 난리가 아니다.

옆길 이족 마을을 통해서 들어간 석림은 전처럼 감동적이진 않지만, 같이간 아가씨 셋이서 얼마나 재미있게 노는지 즐겁기 그지 없다. 길가다 나뭇잎을 따서 피릴 부는가 하면 두 손을 뒷 호주머니에 넣고선 건들거리며 휘파람도 불고... 천진난만 그 자체다.

나오는 길에 기념품점에 들르더니 내게 아무런 의논도 없이 차를 여섯 통 샀다. 내가 아무리 만류해도 막무가내. 이건 부인, 이건 아들용... 선물도 좋지만 내가 저에게 폐를 끼치러 온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차 통에 붙은 가격표를 보니 이건 걔네들 한 달 월급이다!

아이구, 내 짐은 어떻고? 리지앙 아줌마에게서 받은 공예품에 이 차 통들...

마차를 타고 석림 시내로 나가 저녁으로 뭐가 좋으냐고 묻길래 菜자를 써 보이니 어느 식당으로 안내를 하는데, 메뉴에 보니 馬肉,狗肉...이런게 늘려있다. 아마 이 식당은 일본인들이 즐겨찾는 식당이니, 나도 당연히 말고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일본 남자들은 말고기를 정력에 좋다고 여기며, 심지어 육회까지 먹는놈들도 있다).

다른 식당으로 가서 맥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는 돌아 오는데, 애들 셋은 저만치 먼저 가고 둘이서 호젓한 길을 무드 있게 걸어 본다. 내가 남자인가? 딸같은 해연이 이제 예사로 뵈질 않는다. 문득 루구호의 반 생각이 난다.

석림산장에 방을 얻으러 갔는데, 가격표엔 280원, 해연이 웃으며 몇 마디 하더니 60원으로 낯춘다. 지금 리셉션 근무자가 마침 잘 아는 녀석이란다.

내 방엔 난리가 났다. 아가씨 넷이서 TV볼륨을 있는대로 돋우고 드라마를 보면서 깔깔거리고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해연은 그새 욕실에서 머릴 감고 나온다. 발개진 볼 하며 머릴 뒤로 빗어넘긴 모습이 ·나도 이런 막내 딸 하나 있었으면...‘싶다.

11시 반이 되자 애들이 서둘러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해연도 서둘며  내일아침 이리로 온다며 손을 흔들며 뛰어가 버렸다. 갑자기 조용해진 방, 그리고 텅 비어버린 내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