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 금 맑음
7시 반쯤 잠을 깼는데 몹시 춥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나니 훨씬 나아졌는데, 이어 해연 방의 한 아가씨가 오더니 같이 숙소로 가잔다. 해연은 유니폼을 갈아입고 근무 준비중이었는데, 내일 자기와 같이 곤명에 나가잔다. 그러나 아무도 아는이 없는 이 조그만 소읍에서 내가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양말을 못 찾아 배낭을 뒤적거리는걸 본 해연이 어느새 담배 한 갑과 양말을 사 왔다.
그리고는 자기 친구 양매화에게 50원을 쥐여주며 구향동굴까지 안내해 날 주라고 했단다.
한 시간여를 달려 구향동굴 입구에서 양매화와 헤어지며 내일 쿤후반점에서 만나기로 하다.
동굴로 가는 차로 갈아타고 영어를 좀 하는여자의 도움을 받아 호텔을 물어보니 풀이란다.
동굴 관람 소요시간은 넉넉잡고 3시간이면 된다기에 아예 오늘 곤명으로 나가기로 하다.
분위기 있는 식당-그 여자가 맛있다고 소개한 식당-에 들어서니 바닥에 온통 솔잎을 깔아놓았는데, 버섯탕과 야채 볶음과 밥을 먹고 값을 물어보니 60원이란다! 시비도 못 붙겠고 동굴로 향해서 가니 모두 단체 관람객이다. 문표 50원. 리프트는 안타기로 하고 입구부터 들어서는데,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동굴이 얼마나 큰지 협곡을 통해 들어가는데, 동굴 안으로 커다란 내가 흐르고, 동굴 안에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힘찬 물줄기의 쌍폭포. 게다가 500평 정도는 되어 보이는 동굴 안 광장에서 열리는 민속 공연... 종유석이 주렁주렁 달렸나 하면 어느곳엔 석순이 자라고, 마치 황룡동처럼 다락논 형태의 연못도 있다.
동굴 안이 무더운데 파커 차림으로 다녔더니, 땀이 비오듯 흐른다. 게다가 나를 넣어서 사진 하나 찍으려 해도 부탁할 사람 하나 보이질 않고. 출구로 나가니 무조건 리프트를 타야한다기에 입구쪽으로 도로 나오니 경비원녀석이 지라지랄 한다. 이런건 애써 무시해야 한다. 협곡을 운행하는 배를 탈까 하다가 그냥가기로 하고 짐을 찾아 버스에 오르니 아까 만났던 여자를 또 만났다. 자기가 소개해준 식당이 어땠냐고 묻길래 60원이나 나왔다고 하자
차에서 내려 거기서 한참 핏대를 올리며 난리를 부린다.그러고는 씩씩대며 올라와 내게 30원을 건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중국인을 대표해서 내가 네게 사과할게‘
여자는 선생인데 호텔에서도 일을 한단다. 호텔에서 뭘 하는지 몰라도 예의도 바르고 차분한게 호감이 느껴진다. 나더러 잉란에 가서 하루 묵냐고 묻는걸 바로 곤명에 간다고 하다.
오늘밤 이 25세의 유부녀이며, 선생님이며, 한 아이의 엄마와의 역사 만들기는 사양하기로 하다. 나는 양심가이니까...
쿤후반점에 드니 방에 일본, 싱가폴여자애 둘이서 TV를 보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니 순간 어색한 분위기가 된다. 길건너 주바에서 맥주 한 잔 마시고 다시 호텔 식당에서 한 잔 더 하고 방에 와서 쓰러지다.
9/22 토 맑음
6시 반쯤 잠을 깨다. 두 녀석은 아직까지 세상 모르게 자고 있고...
아내와 통화를 하면서 여행 기간이 좀 더 오래 걸릴 것 같다고 얘길 히다.
현우가 휴가를 나와 있는데, 목소릴 들으니 의외로 집에서만 보내고 있는 듯. 내 계좌에서 약간의 돈을 인출 하라고 부탁하다. 싱가폴 애를 시켜서 루구호의 반에게 전화를 해도 받질 않는다. 닝랑 지역은 모바일 폰 불통지역이 많다고 한다. 해연도 근무중 인지 호출을 해도 전화가 없다. 양매화가 9시쯤 호텔로 왔기에 진비루에 가서 어학 학습기를 하날 보았는데, 너무 비싼 것 같다. 내가 해연에게 신세 진걸 학습기 하나 사서 그녀가 영어 공부를 더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는데, 천상 한국가서 녹음기를 하나 사서 부쳐 주어야겠다.
점심을 먹고 나서 싱가폴 애는 체크아웃을 하고 매화와 흑룡담으로 가다.
짙은 숲길을 거닐며 여러 얘길 들어보니 그녀의 아버진 45세, 나보다 어리다. 해연과 중전 동창, 월급이 겨우 300원인데, 영어 가이드를 하면 1000원 벌이도 가능하단다.
그런데도 해연이는 거의 자기 월급의 절반 넘는 금액을 나를 위해 차를 샀다니...
보고싶은 마음과 폐를 끼치기 싫다는 마음이 갈등하다가도, 언제나 그를 보고싶다는 쪽으로 기울고 만다. 비자는 연장을 하기로 마음을 굳히다. 그리고 추석땐 어디 조용한 곳에서 지내야겠다.
매화가 다른곳에 가고싶냐고 묻는걸 사양하다. 해연이 자기 올때까지 안내를 잘 하라고 부탁을 했단다. 내일은 뭘 할까?
9/23 일 맑음
엇 저녁 고량주를 마셨더니 일어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매화에게서 전화가 온걸 10시에 오라고 해서 만나 식물원으로 갔는데, 이 아가씨, 취미가 없는 것 같아 혼자 대충 둘러 보다. 관심 있는 곳만 대충 둘러봐도 하루는 족히 걸릴 만큼 규모가 크다.
콰이찬에서 점심 먹자는 걸 너무 시끄러워서 좀 더 큰 식당으로 가기로 하다.
애저육 튀김, 야채탕, 닭고기 볶음, 햄 볶음밥등으로 배를 채우고 대관 공원으로 향했는데, 중국인들이 재주는 좋다. 국화로 용과 여러 가지 동물을 만들어 놓은 정교함이라니...
여기 저길 쏘다니다 나오면서 그레이프 프루트를 하나 사다.
그녀도 지친것같아 이만 돌아가기로 하다. 시내버스를 두 번씩이나 갈아타고 숙소로 돌아오니 또 싱가폴 여자애가 하나 들어있다. 여자는 같이 지내기 불편한데...
매화와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하도 신발을 탐내길래 70원 주고 한 켤레 사 주다.
숙소로 돌아 오면서 그녀가 나보고 돈이 많냐고 묻는다. 하도 갑작스런 이야기라 어리둥절하고 있으니, 내게 300원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 좀 줄 수 없겠냐고 아예 내놓고 손을 벌린다. 난 나대로 자길 데리고 다니며 비싼 식사 대접하고 성의를 보였는데, 또 돈을 달래니 너무 당황스러워 '내일 보자' 고 일단 거절을 하다.
도대체 이 아가씨가 내게 돈을 요구하는 이유가 뭘까? 내게 몸을 팔겠다는 얘긴가, 아님 부른 배(아마 임신을 한 듯) 때문에 돈이 필요한건가?
내일 공안국 같이 가서 비자연장 신청하고, 류쿠로 떠나기로 했는데...
집에가는데 차비를 100원이나 쥐여 보내면서도 혼란스럽다. 해연과 연락이라도 돼야 그녀의 본 마음을 알지... 방에 맥주를 몇병 사들고 들어오니 싱가폴 여자애의 옷차림새가 가관이다. 그렇다고 내가 들어와도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자기 컵을 더운 물에 헹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