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7 목 맑음
7시20분에 역으로 나가니 모든 역무원들 사이에선 내가 화제의 인물이 되어있다.
아마 ·저 한국인이 어제 쓰리를 당하고 이곳이 무서워서 어제 바로 뜰려고 했는데 표가 없어서 우리가 억지로 표를 구해준 사람이다‘ 이정도 이겠지. 자존심 제로.
게다가 한 여자 역무원은 내 곁에 바짝 붙어 서서 아예 경호(?)를 한다. 거기서 깨끗한 옷차림의 조선족 청년 둘을 만났는데, 한 사람은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데, 매우 호의적이다. 중국 여행시에 주의해야할 것들을 얘기해 주는데, 결론은 사람 가까이 하지 말 것, 도둑 조심할 것등 결론은 무조건 늘 긴장해야 한다는 것.
개찰도 하기 전에 역무원은 나만 다른 입구로 데리고 플랫폼으로 데려가더니 내가 탈 칸 쪽에서 또 밀착경호. 그제서야 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앞다투어 개찰하느라 난리법석.
기차가 도착하자 날 승무원에게 인계하고는 뭐라고 하니 날 렌워(軟
臥)칸으로 안내 한다. 내 표는 분명 잉쪼어인데... 알고 보니 렌워 표가 없으니 날 일단 잉쪼어로 끊은 후 다시 렌워로 바꾸어 줄 작정이었나 보다.
의아하게 바라보는 승무원에게 그냥 잉쪼어로 가겠다고 했다. 나는 장사 도착 시간이 오후 2시쯤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일 아침 6시30분이다.무려 22시간을 이 딱딱한 의자에 앉은 채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무슨 트쾌가 이렇게 오래가나... 중국대륙이 넓은 줄 모르고 이런 무리수를 두는구나~
어쨌든 자리를 잡고 앉을려니 창가의 내 자리에 앉아 내가 비키라고 해도 요지부동의 젊은 녀석과 I와YOU를 구분 못하는 선생이란 작자 하나. 그리고 마댓자루에 옷, 이불등을 싸서 다니는 한 패거리,어쨌든 이런 작자들과 22시간을 부대끼며 가야한다.
선생이란 자가 말을 걸어와 필담을 나누는데, 의외로 이 친구의 성씨가 나와 같은 ·강씨‘이다. 난 참으로 신기하고 반가웠는데 녀석은 무덤덤. 숙소에서 먹던 군밤으로 아침, 오렌지2개로 점심, 저녁은 오트밀 한 캔. 밤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아침을 맞다.
알고보니 우리가 탄 칸은 지정석도 있고 시트에 쿠션도 있는데, 다음 칸부터는 시트가 아예 나무로만 되어있고, 모두 무쪼어(아예 지정좌석이 없는 것)에다 그나마 표 없이 탔다가 경찰에 잡혀 화장실에 갇힌 사람도 있고... 지옥이 따로 없는 듯.
9/28 금 맑음
토끼 눈으로 잠깐 졸았다가 눈을 뜨니 4시 정도, 책도 다 읽어버리고 음악을 들으며 무료함을 달래다. 선생과 젊은 친구(종씨)가 악양도 위험한 지역이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
내가 두 번 다시 당할 순 없겠지...역에 내려서니 날 부르더니 악양에 내리는 젊은이를 하나 붙여준다. 기사와 얘길 하더니 나보고 차비는 식스 에잇....하면서 손가락으로 8원임을 가르쳐 주고 헤어지다. 택시로 가이드북에 있는 설련빈관에 도착하니 80원. 예상은 30원이었는데, 또 예산집행에 문제 발생. 알아보니 동호 근처는 거의가 이런 수준의 방값.
일단 여장을 풀고 양말을 빨고 스프를 하나 먹다.
11시30분경 일어나 한커우(漢口)가는 표를 알아보니 11시에 있단다.
악양루 문표29원. 무슨 문표에 보험료가 포함이 되나? 안 들어가고 배를 타기로 하다.
삼각주(섬)를 돌아서 군산 공원으로 가는데 32원, 여기도 보험료포함.15명쯤 단체로 관광 온 중학교 선생 패거리들과 마나나 같이 동행하기로 했는데, 영어선생 둘과 가이드가 하나 붙은 게 얘기 상대. 이 촌 선생들, 내가 한국서 `ferry boat'를 타고 왔다고 하자, 작은배는 `boat', 큰 배는 ·ship'이란다. 이런 선생 밑에서 애들이 영어를 배운다고?
이 사람들이 늘 말을 시키는 바람에 섬에 올라 구경도 제대로 못했다. 대신 거기 서 있는 궁녀의 석상을 하나 바로 세워주는데 땀깨나 흘리다. 내가 방치된채 뒹굴고 있는 석상을 일으켜 세우려 애쓰는걸 보고 그제서야 지들도 날 거든다.숙소로 돌아와 딱딱해진 만두로 저녁. 그러고 보니 오늘 종일 3원50전어치로 끼를 때웠다.
시내가지 어슬렁거리며 걸어가서 수박과 맥주를 사 오다.
9/29 토. 맑음
일찌감치 일어나 악양루로 가다. 보통 유원지가 새벽엔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한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다. 외국인임을 알아 본 여자가 나에게만 입장료를 달란다.
치사해서 그냥 나와 버렸다. 돈이 아까운게 아니라 뭔가 얄미운 기분이 든다.
자모사(慈母寺)탑을 보러가다 입구를 찾는데, 찾을 수가 없다. 그 앞에는 엉뚱하게도 천주교당이 있고..그냥 먼데서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아무리 부탁해도 모두 거절한다.
아예 카메라 자체를 두려워하는 눈치. 하는 수 없지....
한커우 행 배 표를 예매하러 갔더니 10월 2일에나 있단다. 일단 한커우행은 포기하고 장가계로 갈까, 북경으로 갈까 망설이다 결국 북경행 으로 결정하고 역으로 갔는데, 이런 혼잡이 없다. 와중에 암표상들이 달겨 드는데 모두 도둑으로 보여 상대도 안했는데, 유독 한 녀석이 내게 호감을 보이 길래 얘길 했더니 어디서 왔냐고 한다.
한국인이라니 아예 지가 온 창구를 휘젓고 다니더니 기어코 한커우행까지의 무쪼어 표를 사가지고 왔다.38원짜릴 40원을 주니 한사코 거절한다. 마치 작년의 계림에서 만난 양아치 두목 같다. 40여분 연착하고 들어온 기차는 그야말로 난장판.맨 입구쪽에서 간신히 배낭을 시트 밑에 넣고 얘길 해 보니 거의가 우한에 내린단다. 장사(長沙)서 대학 다닌다는 학생과 이런 저런 대화가 오가는데, 이 자식은 일본 역사 왜곡에 항의해서 손가락 자해한 얘기아니면 한국 축구팀 실력 등 진부한 얘기만 한다.쪽팔리게 조폭놈들이 손가락 자해한 얘기는 곤명에서 서양, 일본애들에게도 들었던 얘기...짜증이 난다.
그래도 내가 외국인이라니까 관심을 보이며 빵을 나눠주는 사람, 담배를 권하는 사람, 시트밑 바닥에 기어 들어가 잠자는녀석...이럭저럭 우창 역 도착.
택시로 양원가에 와서 마리네 집을 찾는데 한 번 와 본곳이 헷갈려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호수도, 아파트 동 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배낭은 무겁고 일단 숙소를 정하고 오토바이택시를 타고 다시 양원가로 가서 한 시간여 헤멘다. 길가의 비디오 가게에 가서 물으니 전혀 반대방향에서 찾았다는 걸 알았다.
열 번은 더 물었는데,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 모두 엉뚱한 곳을 가르쳐 준거다.
다시 젊은 여자를 잡고 전신가 사택을 물으니 자기는 잘 모른다면서 핸드폰으로 한참 묻더니 경비실로 가서 기어코 마리네 집을 알아왔다.
맥이 다 풀린다. 3시간여 만에 집을 찾았으니...마리의 엄마가 나오다 날 발견하고 반색을 한다.그녀의 아버지도 집에 있었는데, 둘이서 필담으로 얘길 나누며 마리 부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시간이 지나도 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들의 핸드폰으로 찾았으나 이미 꺼진 상태.내 피곤한 기색을 살피더니 호텔로 바래다 준단다. 이 양반도 인민 해방군 시절에 북한에서 4년 동안이나 근무했단다. 진남포인데, 그땐 북한이 오히려 중국보다 더 살기가 나았단다. 이런 저런 얘길 나누는 중에 마리가 로비에서 전화를 했다. 반가운 해후 후에 지금 외탄으로 야경 구경을 가자는걸 피곤하다고 사양하고 내일 그네들 회사에서 보기로 약속하다. 그제서야 피로가 엄습한다. 룸 서비스에 맥주를 두 병 주문하고 약간의 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