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둥, 백두산과 옌지
2000.7.19 금 비
울산서 출발할 때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추풍령을 넘어서자 폭우가 쏟아진다. 판교에서 차가 밀리는데 조바심이 난다. 9시 출발한 차가 3시가 되어서야 서울에 도착을 했다. 밥 먹을 새도 없이 지하철로 내달리다. 마음은 조급한데 전철은 한없이 더디 가는 듯. 동인천역 내려서 터미널로 가니 연안 부두 쪽으로 승선장이 바뀌었단다. 택시로 가까스로 가서 승전을 하고 나니 온 몸에 힘이 빠진다. 길이가 130m나 되는 대형선박인데, 진천 페리에 비해서 많이 낡았다. 환전을 장사하는 사람과 하는데, 148원이란다. 은행과 다를 게 없다.
잠이 오질 않아 맥주를 2개나 마시고 누웠는데, 옆 침대의 따이공들 이 떠드는 바람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7.20 토 맑음
8시경 단둥 도착하니 마침 하늘은 개였다. 입국수속을 마치니 10시. 한국에서 목사를 한다는 사람들과 택시로 단둥역까지 오다. 연길행 표를 사고 민박을 찾는데, 어눌한 한국말을 하는 애가 접근을 한다. 조선족이라기에 따라갔더니 시설이 형편없다. 샤워를 하고 전에 묵었던 진달래 민박에 전화를 하니 알지 못하는 중국인의 응대. 봉황산에 갈려고 준비를 하는데, 주인 여자가 비가 와서 위험하다고 가지 말란다. 혼자가면 여러 가지로 안 좋단다. 백두산으로 간다고 하자 주인 여자가 백하로 가는게 더 낫다고 한다. 역에가서 20%공제를 하고 다시 백하행으로 표를 바꾸다. 진달래 민박에 가 볼려고 집을 나서는데 비가 오기에 다시 돌아 오니 조선족 여자애 하나가 들어 왔다. 이런저런 얘길 하는데, 통역이나 가이드를 원하는데, 정 안되면 몸이라도 팔아서 돈을 벌고 싶다는 말에 혀를 내두르다. 주인여자는 월급400원짜리 식당이 있는데 소개해 주마고 꼬시고, 볼썽 사납다. 저녁을 먹은 후 진달래 민박으로 가니 그 새 이름을 바꾸고 아직도 영업중이다. 반가운 해후, 주인아줌마가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다. 금옥과도 통화를 하고 준비해 갔던 전자사전과 전자 옥편을 건네 주니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내가묵고 있는 민박집과도 잘 아는사이. 알고 봤더니 이 여자가 여기서 일을 하다가 독립을 했단다. 숙소에 돌아오니 변기가 막혀서 쇼를 하고 있다. 시끄러운 소리를 애써 참으며 잠을 청하다.
7.21 일 맑음
4시반 일어나 집을 나서다. 기차를 타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보니 40대의 한국인. 인사를 하는데 부산 사람이다. 중국에서 버섯을 수집해서 한국과 유럽으로 수출하는사람. 이런 저런 얘길 나누며 심심찮게 여행을 한다. 옆자리의 꼬마가 매우 더드는데도 그 할머닌 그 응석을 다 받아 주고 있다 샤오황띠(小皇帝)라고 하더니... 지금 11시쯤 되었는데, 2시간여 연착이란다. 어떻게든 되겠지.
7.22 맑다가 비
백하에 01시30분에야 도착을 했다. 너무 연착을 했단다. 조선족 삐끼가 역전에서 붙잡는데, 한국인 두 명이 더 있으니 자기 집에 묵으란다. 만나 보니 김천의 대학생. 식당 한 켠의 베니어로 칸을 질러 만든 방에 들다. 6시경 일어나 밥을 사먹고 백두산으로 갈 준비를 하다. 차비120원 입장료 60원.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 정상부에 오르니 바람이 세차다. 천지에 도착하니 방금 보였던 천지가 없어졌나 하면 다시 나타나곤 한다. 백두산을 오르내리는 길가의 들꽃이 아름답다. 장백폭포로 가는데, 나는 그냥 입구에서 쉬기로 하고 조선족 산삼장사와 농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장백산 박물관 관람 후 소천지로, 지하삼림은 포기하고 시내로 돌아와서 방을 얻는데, 비가 계속 내리는 바람에 30원짜리 중국인 숙소에 들다.
그냥 거지집이나 진배없다. 냉면을 하나 먹고 아침 일찍 연길로 나가기로 하다.
7.23 화 흐림
연길 도착하니 으스스하다. 온도계를 보니 18도. 초대소에 가서 25원짜리 방을 얻고 시내로 나가 보니 갑을방적이 크게 서 있고 다리를 건너자 여기저기 모두 한국어 간판. 조선족 자치주임을 실감하다. 신화서점에서 책을 사고 주위를 둘러 보니 저만치 유경호텔이 있다.
6시 반부터 공연이 있다고 보고 가라는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나중에 시간 되면 생각해 보겠다고 돌아서니, 하얗고 볼이 통통한 북한 여자가“선생님, 꼭 오시라요” 라고 웃으며 말한다. 동북아 호텔 냉면부에서 8원짜리 냉면을 먹고 숙소로 돌아 오다.
7.24 수 흐림
용정으로 가서 윤동주 의 대성중학을 가다. 해란강도 그저 그렇고, 일송정도 감흥이 일지 않는다. 시내에서 한글로 씌여 진 시집, 에세이집을 다섯 권정도 사고 다시 연길로 와서 역전 조선족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는데, 조선족 남자 둘이서 술을 마시다 내게 말을 건다. 나더러 한국 주소와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는 다리 저는 우체국 직원이란 녀석은 아예 맛이 갔다. 하나는 나더러 ‘형님, 형님’한다. 내가 왜 지 형이며, 왜 주소나 전화번호를 가르쳐 줘야하는지... 여기 사람들은 두 집 건너 한 집이 한국에 친척이 있거나 한국 기업에 가족이 다닌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더운물이 나오질 않는다. 홧김에 맥주를 두 병 마시고 잠자리에 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