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한 달 동안의 동남아 유랑기 11
4.9 토 맑음-방콕~칸차나부리
잠이 깨었어도 별로 할 일이 없어 무료해 하다가 칸차나부리에서 책이나 읽자고 작정하고 10시 쯤 버스에 몸을 싣다. 옆자리의 미국녀석 몸에서 치즈냄새가 유난히 심하게 난다. 2시간 반만에 칸차나부리에 도착, 다른 서양애들은 뱀부하우스나 슈거케인에 들고 나와 미국여자애 하나만 Jolly frog.
싱글룸이 없어서 150밧짜리 더블룸으로. 수상방갈로인데,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샤워를 하고 나서도 서쪽에서 방으로 햇볕이 바로 들어와서 에어콘 나오는 맛사지샾에서 맛사지. 100밧인데, 방콕200밧짜리 보다 낫다. 땀을 흘리며 콰이강의 다리까지 가는데, 의외로 멀다. 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한 사람이 “곤니찌와” 라며 인사를 건넨다. 그가 몰고 가는(?)여자애들은 한국 아가씨들.이 일본인은 칸차나부리에 살고 있는데, 자기 홈스테이 소개 팸플릿을 주며 자기집으로 초대를 한단다. 내일 가서 결정하기로 약속. 냉커피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다 해가 질 때 쯤 사진을 찍고 숙소로. 숙소 앞에서 공연을 준비하는데 언제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기다리다 짜증이 나서 세븐일레븐에서 송땀과 맥주, 환타를 사서 방갈로 테이블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한 잔.
4.10 일 맑음-칸차나부리
엊저녁 술마신 뒤끝이 별로 좋지 않은데, 나카야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체크아웃 후 툭툭으로 그의 집으로 향하다. 땡볕 아래서 거의 30분을 헤메다가 겨우 중국계 태국인을 만나 물어 보니 바로 그의 한 집 건너이다.
집은 주택가에 위치한 깨끗한 빌라. 부인은 태국인인데, 사진을 보니 애들이 셋. 또 하나의 애기는 뱃속에 있다며 부인이 농을 한다. 애들은 현재 방콕에 있는데 모레쯤 돌아온단다. 샤워를 하고 한 숨 잔 후 자전거로 교외로 향하다가 어느 순간에 오토바이가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 같더니 내 몸이 공중에 떠 있고 떨어지는데 한참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뒤에 알고 보니 내가 우측통행을 했던 것.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이고 내 눈 위에선 피가 흐른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아예 바닥에 엎어져 있고... ‘이제 큰일 났구나’ 하고 망연자실해 있는데, 키 큰 서양인 하나가 다가오더니 괜찮으냐고 영어로 묻는다. 엉덩이가 많이 아프고 눈위가 살짝 긁힌 상태. 그새 태국인 오토바이 운전자도 멍청하게 바닥에 앉아 있는데, 헬밋은 박살이 나고 썬글래스도 깨어져서 눈을 찢은 모양으로 피 범벅. 백인이 가게에 있던 다부진 태국인을 불러 태국어로 뭐라고 하자 태국인은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그 백인이 말하길, “너 한국에서 왔지? 지금 너는 명백히 사고를 유발한 장본인이고, 이 자는 태국 경찰이다. 빨리 수습하는 게 베스트웨이 이다. 내가 중재 할 테니 가만있어라. 내가 널 도와주겠다” 그러고는 일사천리. 오토바이 가게에서 온 태국인에게 오토바이 파손부위를 체크한 후 견적을 뽑게 한다. 헬밋,사이드미러2개, 변속레버, 썬글래스 값이 모두 730밧. 운전자 녀석이 뭐라고 하는데, 엑스레이 어쩌고 하는걸 듣고는, ‘나도 타박상에 상처가 많다. 그러면 경찰을 부르자’ 고 언성을 높이니, 백인이 이 사고 접수만 하면 나는 500밧씩 두 번의 벌금이 있고 이녀석에게 빨리 1,000밧을 주고 보내버리라며 종용을 한다. 내 자전거도 앞 바퀴는 완전히 망가지고 프레임과 후크는 다 망가진 상태. 그녀석에게 몇 번이나 All over를 다짐받고는 빨리 가라고 하고는 내가 어디 묵고 있냐고 묻는다. 나는 홈스테이 중인데, 자전거 수리는 어디서 맡기냐고 물으니 경찰이 자기 픽업 트럭으로 집까지 실어 주겠다고 한다. 알고보니 이 백인은 4년전까지 주한 미육군 헬리콥터 조종사로 의정부에서 근무하다가 지금은 태국 경찰 헬리콥터를 조종하고 있다며, 내가 일본인이었으면 그냥 갔다고 웃는다. 우측통행을 하면서 사고를 낸걸 보니 한국인인 줄 알았단다. 덕분에 무사히 집에까지 경찰차를 타고 가니 모두들 놀란다. 그나마 내가 덜 다쳤다는 게 여간 신기한 게 아닌 모양. 조금 있으니 일본 남자 하나와 여자애 하나가 방콕으로부터 왔다. 저녁은 3km떨어진 나이트 바자르에 가서 스키야키 뷔페를 먹기로 하고 썽태우를 타고 가다.
아까의 충격으로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맥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고 나니 두당 125밧. 돌아 올 땐 차가 없어서 걸어오는데, 절룩이면서 오려니 죽을 맛이다. 다시 정원에서 위스키 파티. 한 방을 쓰는 일본영감은 둔 채 1시 반경 방으로 돌아오다.
4.11 월 맑음-칸차나부리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보니 온몸이 지끈거린다. 그래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심각한 부상이 없다는 증거이겠지... 기세 좋게 아침을 후딱 해 치우고 거실의 나카야마 전용 침대에 누워서 ‘로마인 이야기’를 끝까지 읽다. 잠이 살풋 들었는데, 일본 애들이 쾌강(river kwai)에서 돌아오고 있다. 나카야마 부인이 쏨땀을 사 왔는데, 해장으로는 맛이 그만이다. 청량고추를 가득 넣은 그린 파파야 샐러드라고 표현하면 적절하리라. 민물 게를 짓찧어서 만든 건 내 비위엔 맞질 않는다. 점심 식사 후 강으로 멱 감으러 가는데, 우리 팀원의 면면을 보면; 1.나카야마-일본서 태국여자와 결혼해서 칸차나부리에 살면서 한국,일본,태국인들과의 친선도모를 위해 일본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면서 일어 강좌도 열고 있는 록 클라이머 출신(별명-곤짱) 2. 일본 영감; 가끔씩 태국에 와서 세컨드와 지내다 가는 60대 초반의 영감, 스킨헤드에 쥐어 짜내는 듯한 목소리의 소유자. 그래도 음식 솜씨는 좋다(별명-마짱) 3. 해옥; 서울서 온 23세의 아가씨, 얼굴이 거의 일본 여자처럼 생겼다(별명-제니) 4.얼짱;동대문 의류상가에서 일하는 한국 아가씨, 나름대로 귀여운 얼굴의 소유자(별명-얼짱) 4.숀;얼짱의 동생, 사학을 전공한 얼짱의 동생. 나카야마로부터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별명-숀) 5.게이코; 센다이에서 술집 여급을 하는 27세의 아가씨, 혀가 좀 짧아서 그녀가 하는 영어는 알아듣기 어렵다(별명-마리) 6. 타다시; 목하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는 엔지니어 출신의 혹카이도 친구, 나이는 31~33세를 넘나드는 똥똥한 체격의 소유자(별명-모구모구;한국어로 먹고 또 먹고) 6.쿠니유키;22세의 복장학교 출신의 풋내기, 늘 오~노노!만 연발하는 약간은 덜 떨어진 녀석(별명-구니(國)) 그리고 나...
무려 4km를 걸어서 햇볕이 들지 않는 다리 아래로 가서 모두 편리한대로 옷을 입고,혹은 벗고 물 속으로 첨벙! 여긴 이미 우리가 찜해 놓은 멱 감기 터. 소문이 나서 건너편에서 수영을 즐기던 원주민들도 이젠 모두 여기로 온단다. 자맥질에 뒤집기. 물귀신 놀이... 한껏 동심으로 돌아가 지치도록 논다.그새 얼짱에겐 치근덕 거리는 팬도 생겼다. 구니 녀석을 꼬셔서 10m쯤 되는다리 위에서 뛰어 내리라고 했더니, 맙소사! 배부터 먼저 물에 닿았는지 녀석이죽겠다고 야단이다...얼마나 아팠을까? 원주민 여자들도 마구 뛰어 내린다. 나도 용기를 내 보고 싶었지만 사실 너무 높다. 늦게까지 싫컷 놀다가 돌아오는 길엔 버스를 타고 오다. 자전거 수리비가 1,355밧. 거의 새 자전거 값이다... 오늘 저녁은 영감이 만든 커리라이스. 미얀마식이라는데, 우리 것 보다 더 맛있다. 거기에 맥주와 위스키를 곁들이고. 신이 났다. 한국 여자애들은 옆집 태국 대학생 집에 초대 받고 가고, 우린 일본노래, 한국노래를 흥얼거리며 새벽까지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