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한 달 동안의 동남아 유랑기(2005)

한 달 동안의 동남아 유랑기 12

베싸메 2013. 4. 5. 16:26

4.12 화 맑음-칸차나부리

어제 너무 많이 마셨는지 골까지 지끈거린다. 마마상이 특별히 만들어 준 에그 프라이에 한국식 국과 구운 생선을 먹고 동굴 트레킹에 나섰는데, 9시도 안된 시각에 온도계는 38도에 이른다. 급기야 속이 메슥거리더니 먹은걸 게워내기 시작한다. 연합군 묘지까지 갔다가 내가 걱정스러웠던지 나카야마가 강에서 쉬다 가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발가벗은 채 물로 풍덩... 게이코가 젤 신이 났다. 물속에서 머리도 내기가 싫다. 한 시간여 물에서 시간을 보내다 다시 자전거로 몽키 스쿨로, 쇼는 보질 않고 동굴사원으로 갔다가 점심을 먹는데, 난 생각이 없어서 아이스커피만 홀짝거리면 아예 스프레이 밑에 자릴 잡고 누워버렸다. 돌아오는 길에 어제의 그 전용 수영장(?)으로. 거의가 어제 보던 얼굴. 얼짱에게 지분대던 콧수염 기른 녀석이 얼짱을 찾길래 데이트 하러 갔다고 했더니, 섭섭한 눈치. 거기서 과일 셰이크 장수 영감이 한국전에 참전했었다며 팔에 새긴 문신을 보여 주길래 일행 모두에게 푸루트 셰이크를 하나씩 돌렸다. 영감 왈, “역시 우리는 피로 맺어진 친구여!”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으면서 옆집 애들을 초대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기타와 그들의 민속 현악기를 가지고 담을 넘어 왔다. 처지는 듯한 태국의 발라드가 지겨워서 우린 ‘아리랑과 사랑해, 사랑으로’ 등을 내 기타 반주에 맞춰 불렀는데, 내 손톱이 길어서 기타 소리가 제대로 나질 않는다.

욘짱도 한 가락, 급기야는 일본세에 눌렸다. 게이코의 목소리가 워낙 크고, 그들 인구가 많았으므로... 또 그렇게 하루가 갔다.


4.13 수 맑음-칸차나부리~방콕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자전거로 여행사에 가서 컨펌을 하려니 수수료가 200밧이란다. 차라리 방콕에서 하기로 하고 맛사지를 받고 나오다  죨리프록에서 스테판 김을 만나다. 그는 오늘 새벽에 이리로 왔단다.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몇 번이나 만났던가? 리지앙, 방콕, 라오스, 미얀마...그도 쏭크란이 지겨워서 이리로 왔단다. 나는 오늘 그리로 갈 예정인데? 내가 집에 와서 방콕으로 간다고 하자 모두들 섭해하는 눈치. 욘짱은 오늘 내게 자기 여자친구를 소개해 주기로 약속해 놓고 왜 갑자기 가냔다. 이때 만만한 핑계가 비행기 스케쥴이지, 뭐... 바로 방콕 행 버스에 몸을 싣고 남부터미널 도착하니 그냥 사람이 붐비나 했는데, 삔까오 다리를 건너면서 DDM을 보니 벌써 한국 애들이 지나가는 행인과 차를 향해 물총질을 하고 있다.  나도 체크인 후 바로 지갑, 카메라를 비닐 백 속에 넣고 거리로 나섰다.10m를 못가서 얼굴에 횟가루 세례.50m도 못가서 온몸은 물에 빠진 생쥐 꼴. 그래도 마냥 즐겁다.

날씬한 여자들의 허리 곡선이 물에 젖어 착 달라붙으니 그 또한 좋은 눈요깃감. 카오산으로 가니 거긴 아예 통행 불가. 전국에서 다 동원 된 듯한 인파를 비집고 끼일 염두가 나질 않는다. 거의 공란의 날을 보내고 저녁이 되었는데, 몇 군데의 거리 퍼포먼스를 보고 숙소로 오니 갑자기 허탈해 진다.

맥주를 혼자 들이키고 있자니 33세의 프랑스 녀석이 같이 마시잔다. 무대 조명을 하는 놈인데, 가끔씩 휭하니 나와서 일 년쯤 돌아 다니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들어가서 돈을 버는 팔자 좋은 녀석. 그래서 나는 싱하를 마시는데, 녀석은 하이네캔을 마신다. 옆자리 한국애들에게 부탁해서 소주 몇 잔을 마시게 했더니 연신 굿, 굿하며 홀짝거리더니 비실대면서 지 방으로 가서 처박히고 만다. 아 아 우리의 굳센 한국의 건아들은 12시가 넘은 이 시간까지도 소줏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4.14 목. 맑음 -방콕

새벽에 커피를 마시러 카오산에 가 보니 아예 폐허이다. 차, 담장, 가게문 할것 없이 모두 흰 칠갑. 바닥은 온통 횟가루 범벅. 서양녀석들은 그때까지 삼삼오오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맥주를 병째 빨고 있고, 쓰레기 치우는 아저씨는 치우느라 정신이 없다. 그 귀한 생수병이 산을 이루고...

숙소로 오니 어제 그 프랑스 녀석이 한국 여자애가 바람을 맞혔다고 투덜거린다. 내가 보기엔 바람 맞아도 싸지...싶다. 사남루앙으로 해서 왕궁 옆으로 가 보니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길거리에서 테이블 크로스 몇 장. 쇼핑끝, 차이나타운이나 실롬에 가지 않기로 하다. 아예 공항이용료 500밧과 버스비 80밧은 여권에다 두고 모레까지 남은 밧화를 다 쓰기로 하다.

오후에 또 물싸움 유치하리만치 동심에 젖어 본다. 옆 사무실 아가씨들과도 한 판(?) 벌였는데, 몸매가 장난이 아니다. 포트리스에 공연 보러 갔더니 캄보디아 봉제공장에서 근무한다는 아가씨가 서울서 온 남동생과 공연을 보려고 왔다. 있는 돈 이때 쓰자 싶어 치킨과 맥주 스프링 롤을 가득 사 와서 자리 앞에 놓고 싫컷 먹는데, 주위 사람들이 웬 잔치인가 싶은 눈치.

숙소에 들어가니 물이 나오질 않는다. 1층에서 너무 많이 써서 그렇단다. 이빨도 못 닦고 그냥 자려니 많이 찜찜하다. 내일은 호텔로 옮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