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2001.4~6 중국,동남아 배낭여행

2001.4~6 중국,동남아 배낭여행 3

베싸메 2013. 4. 5. 16:38

 

4/9 월 맑음-무척 더운 날씨

아침 8시40분경 장과 마리가 호텔로 오다. 함께 배표를 사러 가자니까 그들이 웃으면서 봉투를 건넨다. 열어보니 이미 배표를 사서 넣어두었다. 얼마 주었냐니까 그냥 웃기만 한다. 588원. 내가 돈을 치루려 하자 그들은 한사코 돈 받기를 거부한다. 이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위치도 익힐겸 우한 항구로 산책을 가다. 생각보다 부두가 매우 크다. 마치 어느 바닷가의 항구에 온 니낌이 들 정도로 배편도 다양하다. 급행, 쾌속선, 완행... 점심은 가이드북에 나온 시제이메이(四季味)로 갔다. 정말 입에 넣고 깨물면 맛있는 국물이 톡 터져 나오는 탕포우즈와 계란 스프레디, 량차이국수, 베이컨과 익힌 과일,야채등으로 싫컷 포식을 하고 내가 계산을 할려니 이미 장이 돈을 냈단다...

너무 미안하다. 나 혼자서라면 2원이면 되는 식사비를 100원 넘게 쓰다니,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어쩔 줄을 모르겠다.

어딜 가고 싶냐길래 식물원으로 가자니 쾌히 응한다. 동호를 끼고 짙푸른 가로수길을 달리는데 너무 멋있다. 호북대학을 지나 도착한 식물원은 그야말로 식물천지, 꽃 천지이다. 그들과 팔장을 끼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기분은 행복하다고 해야할 것 같다. 장과 마리도 오랜만에 너무 즐거운 모양. 여기 오길 잘했구나. 4시간여를 돌아다니는데, 거기 온 사람들도 모두 행복해 보였다. 한 곳에 가니 아편의 부작용을 커다란 판넬에 사진으로 전시해 놓았는데, 끔찍스럽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거긴 약용식물 전시관, 그것도 양귀비 재배 하우스 앞이다...

유명여가수와 연예인의 아편으로 인해 망가지는 모습을 주검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준다. 막차를 타고 마트에 가서 배에서 소용되는 식품을 사러 가다. 물 쿠키, 맥주, 과일등을 사서 호텔로 갔는데, 그들이 물건만 방에 갖다 두고 다시 나오란다. 택시로 한참 달려 넓이가 2~300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큰 레스토랑에 갔는데, 테이블 마다 웨이트리스가 하나씩 대기하고 있다. 거기서 광동, 스촨요리를 먹는데, 솔직히 가격이 부담스럽다. 마리와 내가 맥주 한 병씩을 마시면서 너무 신세를 진것같아 미안하다고 하자, 마리가 무슨 말이냐며 오히려 자기네를 찾아와서 고맙단다. 내가 음식값을 낸다니까 펄쩍뛰며 않된다고 한다. 중국에선 손님이 식사비를 내는게 아니란다. 옥신각신 하다가 이번엔 내가 이겼다.205원, 그날 우리가 먹은 식사비.

대신 내일 배타러 갈 때 택시비는 마리가 내기로 하다.

4/10 화 비

늦게 잠든 탓인지 모닝콜을 5분 동안이나 못 들었다. 겨우 일어나 마리를 기다리니 약속한 시간에 호텔로 왔다.

그녀는 나를 바래다 주기 위해 일부러 집에도 가지 않고 자기 친정집에서 자고 날 데릴러 온 것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서니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어제 더워서 반팔 차림으로 다니던 것과는 달리 너무 갑자기 변한 날씨에 어절 줄 모르겠다. 마리는 아예 어머니의 외투를 입고 나섰다. 항구에 도착해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젊은 녀석이 다가 오더니 중국은행이 어디냐고 묻는데, 반바지에 짧은 티셔츠에 슬리퍼를 끌고 이빨을 달달 부�치며 하는 행색이 어지간히 추운 모양이다. 알고보니 중경에서 오늘 아침 도착한 일본 애인데,  현금이 없어서 배에서 종일 쫄쫄 굶었단다. 내가 우유와 빵을 꺼내 주자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는다. 이윽고 승선을 하는데 마리가 표를 사서 날 따라서 배로 온다. 출발시간이 아직 30분이나 남았다며 방에 와서는 중국에서의 주의할 점들을 하나 하나 당부한다. 객실은 깨끗하고 나 혼자이다. 마리에게 이제 배에서 내리라고 하자 일부러 자기들을 찾아 왔는데 잘 못해준거 같아서 미안하다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나도 웬지 모르게 콧등이 시큰하며 그녀를 살며시 안아 주었다.

신파조의 이별. 비 오는 부두에 서서 마리는 내가 보이지 않을때 까지 손수건을 흔들고, 나도 짜이찌엔을 외치며 손을 흔든다.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마리 말마따나 우한의 날씨는 마치 어린아이의 얼굴같다. 방금 웃다가 갑자기 울고, 찌푸리고... 어젠 26도, 오늘은 0도 가까우니 도무지 감을 못잡겠다. 2인실 방은 TV, 침대 책상, 세면기 안락의자가 전부. 그런데 너무 춥다. 히터도 없다. 이 지경으로 충칭까지 가면 큰 일인데... 침대에 이불을 둘러쓰고 누워 있다 한 숨 자고 나니 11;30 책을 좀 읽는다. 밖은 너무 추워 나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4박5일 가는 배의 요금은 천차만별. 60원부터 1022원까지 모두 5등급, 게다가 선실에 못들어가는 산석(散席)까지 있는데, 복도에 이불을 둘러쓰고 앉은 이들은 보기에도 안쓰럽다. 매점에서 해바라기씨 한 봉지를 사서 까먹고 방을 둘러 보니 창문 하나가 꼭 닫히질 않는다.

배 구석 구석을 뒤져 선원 3명을 끌고 와서 기어이 문을 고쳤다.

녀석들이 고갤 절레 절레 젓는다. 내가 누군데...

음악을 듣다가, 책을 읽다가 어느듯 밤이 되었다. 매점에서 사 온 술로 심심함을 달래고 있는데,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난다. 배가 어디 부딛혔나 본데, 좀 있으니 안내 방송이 나온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술이 다 깰 지경인데, 이 사람들은 별거 아닌 듯 각자 제 할 일만 하고 있다. 양자강물고기밥이 될뻔한 밤이었다.

억지로라도 잠을 좀 자 두어야지.


4/11 수 맑음

06;00쯤 잠을 깨다. 너무 춥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있다가 10시경 밖을 보니 햇빛이 나는 모양인데, 내방쪽은 아직 응달이다.. 사발면을 하나 먹고 밖으로 나서니 사람들이 모두 날 쳐다 본다. 복무원 아가씨의 반가운 인사를 받으니, 그래도 기분이 나아진다.

1층부터 3층까지를 운동삼아 돌아 다니다. 1층은 식당, 2층은 가라오케, 오락실, 3층은 선원실...3등칸엔 사람이 없고, 2등실이 10여명? 나머진 모두 통로 바닥에 이불을 깔고 둘러쓰고 누워 있다.

5등실 까지도 못든 인생.그들에겐 산석표도 큰 돈이었으리라...

한 곳에 젊은 여자가 빠찡고도 아닌 동전 밀어내기 게임기를 운영하고 있는데, 코인을 한 개 1원에 사서 붉은 스티커가 붙은 코인을 떨어뜨리면 20원을 준단다.젊은애들 서넛이서 어울려서 게임을 하는데, 판판이 돈을 잃는다.100원쯤 잃은 녀석이 거의 포기하고 둔 몇 개의 코인으로 엉뚱한 녀석이 횡재도 하고, 이 여자가 나보고도 해 보라는걸 손사래 치다. 여자는 연방 둘러 싸인 젊은이들에게 농담도 해대면서 게임을 권유한다. 잃은 녀석들도 그리 미련을 두지 않는거 같고...

배 한 켠에서 혼자 카드를 가지고 노는 계집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자 냅다 내빼버린다. 2층의 엔진실 부근이 그래도 온기가 있는 듯, 모두 벽에 옹기종기 붙어서 한담을 나눈다. 2,3층 갑판엔 어린애들을 데리고 나와서 놀리고 있는데, 하나같이 기저귀도 채우지 않은 밑터진 바지를 입히고 있어 이채롭다. 윗도리는 애가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껴입히고. 알고 보니 이 배에 외국인이라곤 나 혼자인 듯. 멀리서 날 지켜보고 있다가 나와눈만 마주치면 눈 둘 곳을 몰라 당황들 한다.

중간 기착 부두에서 계란 5개 3원, 땅콩1봉 2원에 샀는데, 찐 계란이 먹을 만하다. 오후엔 스촨성에 산다는 부부가 내게 말을 걸어 온다.

일부러 혀를 굴려 ‘니 써머 띠팡?’ 한국이라고 하자, 헬로우, 오케이를 연발, 아마 마누라 앞에서 자기의 유식을 과시하려는 듯 한데, 정작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녀석은 날 홍콩, 광동, 일본인으로 만든다. 어쨌건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