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12/28
12/9 월 맑음-류쿠행 침대버스
일주일 정도의 충분한 휴식.몇가지의 추억쪼가리. 여태 대리에 와서 그냥 된장찌개나 먹고, 한국말
로 싫컷 수다 떨고 이틀정도 쉬다 바로 갈려고 작정하였지만 한 번도 그냥 떠난적이 없다.
뭔가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날 반겨 맞아주는 사람은 없어도 그냥 나를 잡아끄
는 묘한 매력이 있는곳이다.
천천히 짐 정리를 하면서 박에게 재차 의중을 물었다.
자기는 무조건 나를 따르겠으며, 코스고 일정이고 내 마음대로 정하라는데는 그를 떨칠 명분이 없다
누쟝리쑤족자치주는 윈난성 북서부에 위치하며 미얀마와 접경지역이다. 행정자치부가 있는 류쿠(六
庫)를 포함하여 5개의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리쑤족, 누족, 두롱족이 거주한다.
이 지역은 누쟝, 란창쟝, 두롱쟝 등 3개의 강이 가로지르고 있어서 교통 수단에 많은 어려움이 있
다. 그러나 이런 조건 때문에 까오리꽁샨(高黎貢山)같은 산악지형들과 어울려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
고 있다. 일대를 뒤덮고 있는 원시 자연의 숲때문에 아주 좋은 약재의 생산지로 이름 높다.
류쿠에서 꽁샨의 마을까지 강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경이로운 산과 급류가 만들어내는 경치를 즐기
며 강을 가로지르는 리쑤족 고유의 도강방법(외줄타기)을 볼 수도 있다.
또한 누쟝 대협곡은 누쟝, 란창쟝, 두롱쟝의 3대 강과 산들이 만들어 내는 최고의 볼거리다. 대협곡
은 남북으로 300km에 걸쳐 이어지며 중국에서 가장 긴 협곡이다. 계곡의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 4000
미터 이상의 봉우리이며, 가장 낮은 곳은 해발 2000미터 정도로서 미국의 그랜드캐년 다음가는 대협
곡이다.
샤관까지 차를 타러가는동안 그에게 론리 플래닛에 나온 그 지역의 특색과 해야할 것들에 대해 목이
잠기도록 얘길 해 주는데, 그냥 고개 끄덕이는게 `이 친구는 여행 목적이 뭔가, 왜 나를 따라 그 험
한 길을 갈려고 하지?' 라는 생각이 든다.
문사장이 야크 까페에 독룡족(두롱주)에 대한 영문 책자가 있다고 해서 한 시간을 뒤지다가 결국 허
탕친게 약간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샤관 신화서점에서 가이드북을 하나 산게 그나마 위안을 준다.
오후6시경 드디어 우릴 실은 야간 침대버스는 류쿠를 향해 출발하다.
멀고도 험한 250km의 여정이 막을 올리는 순간이다. 의외로 차 안은 여유가 있어 다행이란 생각.
맨 뒷자리 5명석에 아이를 데리고 탄 여자와 나 뿐이다. 박은 2층에 자릴 잡았다. 2층이 흔들림이
심하다고 얘길 해 줘도 별로 개의치 않는듯.
바오산을 지나며 뺑뺑이가 시작되면서 난 억지로 잠을 청했다.
하긴 깜깜한 버스 안에서 잠자는 일 말고 할 일도 하나도 없다...
12/10 화 맑음-피엔마(片馬) 6시쯤 졸린 눈을 비비며 조그만 시골 버스정류장을 연상시키는 류쿠 터미널을 빠져 나왔다. 방을 보러 다녔으나 썩 맘에 내켜하지 않는 박을 달래 오늘은 피엔마로 가자고 했다. 거기서 방을 잡으면 아무래도 쌀것같고, 어차피 한 번 들러보기로 했으니... 미시엔(쌀국수)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7시 반경 피엔마를 향해 출발을 했다. 거리가 100km쯤 되니 2시간쯤 걸리리라
생각한 나의 순진한 통박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말도 아니란게 드러났다. 누지앙을 사이에 두고 이리 저리 건너던 버스가 헥헥거리며 구곡양장 꼬부랑길을 오르면서 부터 `아이구!' 라는 비명밖에 나오질 않는다 마을을 지나고 가끔은 포장된 길을 가나 싶으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고갯길. 고도계는 이미 해발 3300m를 넘어서고 있다. 세시간 여를 달려 피엔마 진에 도착을 하고보니 박이나 나나 얼굴이 노랗게 떠 있다. 원래 국경까지 가기로 했는데, 내가 보기엔 여기가 사실은 중국의 끝인데,
지들 멋대로 미얀마 쪽으로 계속 길을 내며 침탈해 가고 있다고 보는게 맞지 싶다. 호텔에 갔더니 트윈이 200원이란다. 그제야 느낀게 여기오는 외지인은 모두 돈 많은 사업가나 브로커, 외국인이니 그들이 방값 비싸게 받아먹는건 당연하다고 느껴진다. 프런트에 짐을 맡기고 일단 시원하게 샤워부터 하기로 했다. 시내로 나서니 온통 제재소 노동자와 길게 꼬리를 문 트럭의 행렬, 그리고 요란한 소릴 내며 돌아가는 제재소의굉음 뿐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비탈에 들어찬 노동자들의 숙소... 리쑤족들이 대부분인 시장릉 구경하다 목욕탕엘 갔는데, 주인 녀석이 너무 악수도 청하고 "환잉 광린"하며 친절하게 해 준다. "나 한국 친구도 있고, 미용실하는 울 마눌에게 머리도 많이 깎는다"며 설레발이를 치는데,
그제서야 거기도 한국 사람이 목재관계로 많이 왕래한다는걸 알 수 있었다. 찔찔 나오는 더운 물에 감지덕지하며 샤워를 마쳤는데, 이 잡놈이 수건 빌려준 값 16원을 달란다. 아까의 그 친절하던 표정은 오간데 없고 마누라까지 나와서 핏대를 올린다. `아, 또 중국놈에게 바가지 썼구나.' 그놈의 타월 시장가면 2원이면 살 수 있는데, 미리 값을 물어보지 않은 내 불찰이다.
돈을 던지듯 팽개치고 스라린 마음으로 허판으로 점심을 먹고는 류쿠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름대로 골짜기에서 리쑤족 사람들의 생활도 접하고 국경의 운치도 느껴보려 했으나 이미 김은 다 새버렸다 류쿠로 나오는데, 또 차비가 아까와는 다르다. 죽자사자 올라온 길을 도로 내려가는데 5원 비싼 30원이다.
열받은 맘에 또 바가진가 싶어 안내문을 보니 버젓이 `샹처(上車)'로 되어있다. 터미널 옆 교통빈관에 60원 달라는걸 10원 깎아서 체크인을 하려고 보니, 어? 이 아가씨 성이 나와같은 `강'씨다.
그녀도 신기한듯 방글거린다. 방에 있는데, 그녀가 차와 꽃을 몇 송이 꽂은 화병을 들고 오면서 선물이란다. 여기서도 종씨는 통하네...姜曉梅, 지금도 잘 지내고 있는지...
12/11 수 맑음-꽁샨(貢山)으로 09시 차로 꽁샨을 향해 출발. 차는 쉬임없이 누지앙을 따라 북으로 달린다. 다리가 없는곳의 두 동네 사이에는 어김없이 케이블이 걸쳐져 있고, 간간이 그걸 이용해서 강을 건너는데, 남자 여자 아이 할것없이 능숙하다.
20여m는 족히 될 높이에서 도르래하나에 의지한 채 빠른 속도로 강을 건넌다는게 큰 담력을 요할텐데도 전혀 거침이 없다.
만약 이런 시설이 없다면 몇10킬로미터를 돌아가거나(다리있는곳으로) 아니면 강을 건널 방법이 없다.강의 이름이 왜 `怒江'이 돼었는제,
그 사나운 물살을 보고서야 알것같다. 물색깔은 마치 옥색 물감을 풀어놓은듯 신비롭기까지 한데,
흰 포말을 일으키며 굽이쳐 흐르는 강물은 당장이라도 강가의 모든것을 삼킬기세이다. 여기도 어김없이 도로가 온통 공사중이다. 게다가 저 멀리서 원목을 실은 큰 트럭이라도 올라치면 넓은곳에서 차가 지날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한다.
푸꽁(福貢)에 2시15분쯤 도착했는데, 3시까지 점심을 먹는다고 알고는 느긋하게 어향육사에 볶음밥을 시켜먹고 돌아가니
우리때문에 차가 여태 기다리고 있다.
알고보니 30분간의 시간을 준다는 소리였다... 공산을 20여 km남겨두고 드디어 올것이 왔다. 앞서가던 돼지를 가득 실은 차가 뒷바퀴 축이 부러져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고, 적재함에서 쏟아져 내린 30여마리의 돼지들은 물이 내려오는
뻘밭에서 꿀꿀거리고, 송아지만한 돼지 한마리는 차에 치었는지 뒷바퀴짬에 죽은듯이 널부러져 있다.이미 밤은 되어서 으슬으슬 추워오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해결방법을 제시하는데, 내가 보기엔 모다 터무니없는 생각같다.지프는 겨우 틈새로 빠져나가는데,
우리가 탔던 버스는 어림없다. 차에 탔다 지겨워서 내렸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이미 몇몇은 포기한 듯 각자의짐을 메고 걸어서 간다.
여기 리쑤족 사람들은 모두가 허리둣쪽에 50cm정도의 칼을 차고 있는데, 나무도 하고 수풀을 헤쳐나가는데 쓰이는것 같다.
표정은 온순 덩어리인데 칼을 차고 있으니 밤길에 외진곳에서 만난다면 겁깨나 날것같다. 준비한 음식도 없이 배는고프고 물로 허기를 채우는데, 시간은 벌써 10시를 가르키고... 차에 올라갔더니 여자애 하나가 랜턴을 좀 빌려 달랜다. 시렁에 있는 보퉁이를 꺼낼때 도와줬더니 생긋 웃으며 거기서 귤 몇개와 바나나를 준다.
사양할 여유가 없다. 박과 그걸 허겁지겁 먹는양을 보더니 "더 줄까? 나 많이 있어" 그놈의 체면이 뭔지, 허기를 면하고나자 그새 필요 없다고 대답하는 여유도 생겼다. 얘가 원래는 박의 옆 통로쪽에 앉았는데, 잠을 좀 자겠다며 내 옆의 창가 자리로 옮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했던가? 잭으로 겨우겨우 차를 들어 올려 돌을 끼우더니,
원목트럭이당기고 사람들이 달려들어 도로가로 미니 어쩌다 버스가 지나가는 틈이 생겼다. 모두들 환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차에 올랐다. 내 옆의 여자아이가 졸면서 머리를 자꾸 부딛길래 내 가슴쪽으로 기대라고 했더니 말없이 기대더니날 가만히 올려다보는 그 애의 눈과 마주쳤다.
왼팔로 그애의 어깨를 감싸주니 아무 거부감 없이 내게 파고 든다. 그걸 본 박이 계속 씨부렁댄다. "계집애, 아까 나와 앉을땐 그렇게도 쌀쌀맞더니, 강형, 걔가 강형을 좋아하나 봐요" 내 파커의 후드를 꺼내어 머리에 쓰는 순간 그 애는 기다렸다는듯이 내게 입을 내 밀어오며 손으론허벅지 안쪽을 쓰다듬는다.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나... 겨우 열 일곱 여덟의 어린애가 이런 대담한 짓을 하면서도 가끔씩 한자리 건너 앞에 앉은 친구로
보이는 애에게 지네말로 뭐라 지껄이고,
다시 내게 입술을 요구하고...거부하면 애가 민망해 할것같고 응하자니 내 이성이 용납을 않고... `그래 이게 뭐 대수람, 그냥 춥다는 애를 감싸주는 나의호의지.' 어린애의 그것같은 보드라운 입술.
육체적인 욕망을 떠나 이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이 나를 어지럽힌다. 옆에서 박이 계속 주절거린다. "도대체 이놈의 동네 계집애들은 어떻게 된 것들인지, 원... 여튼 강형,
공샨 가면 걔들과 밥이라도 먹자고 해요. 지들도 둘이고 딱이네." 길고 긴 그러나 결코 지루하지 않던 그 길이 끝났다. 시간은 벌써 1시가 가까워 오는데,
차에서 내리자 마자 여자애 둘은 어떤 30은 됨직한 여자를 만나더니 뒤도 안돌아보고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호텔을 찾으니 여기도 어김없이 100원을 요구한다. 맞은편 터미널에 딸린 여관은 30원이라길래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묵기로 하고 짐을 풀자마자 불이켜진 식당에 가서 맥주와 밥을 시켜먹고 침낭을 덧쓰고 잠이들다
12/13 금 맑음-꽁샨에서
아침에 겨우 몸을 추스리고 나와보니 핫샤워는 고사하고 더운물도 나오지 않는다.
주인녀석은 능글거리며 보온병 물을 열개정도 부어서 머리라도 감으란다."미친놈, 어째 방값이 너무
싸다고 생각했지..." 박도 불펑이 대단하다.여차하면 한 대 날릴기세다.
미리 지불한 방값을 받아내고 말없이 어제의 그 빈관으로 가서 90원으로 깎아서 방을 얻고 바쁘게 세탁도 하고 더운물로
샤워도 하고나니 좀 살것같다.
밥을 사다가 문사장이 챙겨준 깍두기와 함께 먹으니 기운이 솟는듯하다. 박과함께 빙중러(丙中落)
향으로 4km쯤 걷는데, 햇살이 너무 따거워서 반팔만 입었는데도 땀이 삐질거린다.
그런데도 그늘만 들어가면 서늘하다. 그만큼 고지대에, 맑은 공기에, 강한 자외선...
공기엔 습기라곤 하나도 없는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의 얼굴이 많이 검은것이리라. `희망촌'이란곳을 다리로 건너고 보니 조그만 학교가 있다.
설명을 보니 `이 향 출신 모씨가 홍콩에서 성공하여 이 학교에 몇만원을 기부해서 우리는 행복하게 공부하고 있다 어쩌고 저쩌고...'
선생이 수업을 마치고 나오더니 교무실로 안내한다.
일단 차와 담배를 건네더니 어느새 여선생 하나가 술을 한 병 가지고 수줍은 얼굴로 들어선다.
우린 낮엔 술을 안마신다니까, 다시 맥주로 바꿔오고, 어쩔 수 없이 한 잔을 마셨더니 여기서 며칠 묵을거냔다. 두룡지앙을 갔다 올거라니까,
외지인은 허가서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라며 안타까워 한다. 이건 영 아닌데...
호텔로 돌아와 밥사러 나간 박이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오늘 쇼가 들어왔다고 한다. 밖에서 시끄럽게 외치고 음악소리가 나더니 오늘 쇼 들어왔다는 광고였구나... 그 유치찬란한 쇼에 대해서 설명을 해도 그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 향은(우리로 치면 면 정도) 인구가 많아봐야 3000정도일거고,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까지 쳐도 5000은 넘지 않을텐데, 도대체 어떤녀석들이 올까 궁금하기도 하다. 7시경 4층에 위치한 작은 예식장만한 공간엔 벌써 사람들이 가득 차있고, 쇼는 이미 시작되었는데,
평범한 복장의 코미디언같은 사내가 만담을 하자 웃고 난리다. 게다가 스트립걸의 복장을 볼라치니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냥 팬티에 브러지어로 모션은 마치 초등학생의 율동수준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휘파람을 불고 환호작약한다. 함께 온 청춘남녀는 키득거리며 수작하기 바쁘고, 장내는 그놈의 중국냄새와 담배연기에 먼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나와버렸다. 입장료만 5원 날렸네! 컴컴한 거리를 따라가다 보니 멀리서 불빛이 반짝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광풍(狂風)이란 이름의 나이트 클럽(혹은 디스코 테크)이다. 들어가서 맥주를 두 병 시켜놓고 앉아있으려니 옆자리의 두 여자애가 같이 건배를 하자고 한다. 박의 제의로 합석을 하고 같이 춤도 추다가 여기는 너무 시끄러우니 차라리 가라오케로 가잔다. 세상에, 여기도 골빈 인간들이 있다.택시를 타길래 어디까지 가나 싶었는데, 겨우 200m쯤 가더니 내리자면서 10원을 휙 던진다.
꺼졌다 켜졌다 하는 마이크를 잡고 月亮代表我的心을 부르니 좌중이 모두 환호를 한다.
이 두 녀석은 그냥 음치라고 하기엔 표현이 모자랄 정도.
박의 파트너는 키가 170정도 되어보이는 늘씬한 아이이고,내 파트너는 165정도의 평범한 체격의 평범한 얼굴인데,
드디어 박의 수작이 시작됐다. 다시 자릴 옮겨 술을 더 마시고 우리방에가서 걔들이 사온 과자를 먹다가 내일 호텔서 만나 삥중러에 같이 가기로 하다
12/13 금 맑음-삥중러(丙中落) 오전 열시가 다 되어가도 어젯밤 그 여자애들은 오질않는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그를 채근해서 아침을 먹은 후 출발을 하다. 삥중러는 누지앙쪽 샹그릴라이다. `샹그리라'란 말은 이상향을 뜻하는데, 그만큼 원시에도 가깝고 아름다운 세상이란 말이 아니겠는가?
거기 가면 더친쪽에서 바라다 보이는 메이리 설산도 볼 수 있다고 한다. 티베탄들의 경외의 대상인 그 설산이 몇천 km를 돌아서 누지앙쪽에서 바라다볼 생각을하니 가슴이 뛴다.
빵차(우리의 다마스쯤되는 소형 밴)를 타고 1시간 반쯤 가니 드디어 멀리서 설산 하나가 우뚝 섰다.
운전사에게 저게 메이리 쉐이산이냐고 물으니, 그냥 `쉐이샨(雪山)'이란다. 평탄한 길을 갈땐 햋볓이 내리쬐더니 좁은 골짜기로 들어서니 갑자기 짙은 안개가 드리워진다. 아랠 보니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있고, 불쑥 불쑥 나타나는 야크와 양떼,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운전사는 익숙한듯 안개길을 헤쳐 나가는데,
오금이 저려 밖을 내다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삥중러에 도착하니 조그만 소읍. 휘돌아 나가는 누지앙 강가를 따라 동네가 형성되어 있고, 진 소재지는 표고 300m쯤의 언덕위에 상가와 관청이
-관청이랄것도 없지만-줄지어 있다. 멀리 협곡 건너에 우리의 하회마을 처럼 예쁜 동네가 있어 그리로 가보기로 하는데, 거리가 4km나 된단다.
그냥 조그만 강 하나를 건너면 되는데,
빤히 보이는 마을을 다리 있는데까지 돌아서 간다니 기가 차다. 나는 계곡으로 내려가서 강을 건너자고 했는데,
그는 막무가내로 길을 따라 가잔다.
내려갈땐 몰라도 올라갈 일이 걱정이었으리라... 산보삼아 한 시간쯤 걸으니 제법 큰 학교가 있는 동네까지 도달했다 동네 가게서 요깃거릴 사고 50원짜릴 내밀었더니, 거스럼이 없다고 난리다. 어쩌랴? 6원어치 군것질하고 잘못하면 50원 날리기 생겼지만,
누가 이 깡촌에서 거스럼을 만들 수 있으랴? 동네 규모도 제법 크고 의외로 교회까지 있는걸 보고 저으기 놀랐지만 론리에 의하면 여기는 벌써 1800년대 말에 서구 사람이 들어왔었고,
카톨릭까지도 전파시켰다고 한다. 이리로 오던 사람들이 비행기가 추락해 길을 잃고 겨우 살아났는데,
거기서 그들이 인류의 이상향을 보았다고 이 부근이 `샹그리라'로 불린다고 한다.-아직도 그 지점이 어디인가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 이 고장의 역사와 특이한 풍습을 알겸, 좀더 깨끗한 화장실도 찾을겸 학교에 가니 학생들이 쉬는 시간인지 운동장에서 놀고 있다가
우릴 호기심에 찬 눈으로 흘끔거린다. 화장실에 갔더니, 티엔나!(세상에나) 푸세식에 살인적인 악취, 게다가 칸 도 없이 뻥 뚫린 공간에 수지않고 붕붕대는 파리떼...
학교 화장실이 좀 더 깨끗할 거라는 우리의 짐작은 보기좋게 어긋나 버렸다. 좀 더 쾌적한 환경의 야외화장실을 이용하기로 하고,
말없이 코를 쥐고 물러나다. 애들에게 영어선생을 찾으니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다고 했다.이 학교가 규모가 커 보이는 것이 학생들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는가 보다. 침실엔 2층 침대가 줄지어 있고 꽤재재한 이불에 밥을 타 먹을때 쓰는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난간에 줄지어 있고 책상이나
다른 가구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잠만자는 방인가 보다. 영어선생도 없고, 양지에서 장기를 두고이는 선생들을 향해 갔더니 모두 쭈볏거리며 일어선다. 황급히 그냥 하던거 하라고 하니 다시금 자리에 앉고 한 사람이 우리가 앉을 의자와 차를 내 왔다.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니 북조선에서 왔냔단다.
`한궈런'이라고 강조하자 하나 둘 질문이 쏟아진다.그리고 우리의 옷차림과 카메라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장기를 가리키며 `한국에도 이런게 있다'고 하니 당장 한 판 두잔다.사양하며 메이리 설산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아까 우리가 본 산이 맞단다.
더욱 놀라운것은 여기서 거기까진 40km가 채 안되는데, 말로 간다면 5일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강때문에 길을 돌고 길이 없어서 길을 내면서 가야하기 때문이란다. 체육선생인듯한 사내가 애들을 한 부대 몰고왔다. 아마 애들을 동원해서 난을 캐러갔던듯 난이 몇촉가지고 왔는데,
관심을 보이자 창고 문을 열고 100여개의 난초분을 보여주며 우리더러 하나 사란다.
가격을 물어보자 한 분에 500원이란다.지랄같은 소리하네... 학교를 나와 길을나서니, 저쪽 골짜기에서 100필은 되어 보임직한 한 무리의 말떼가 나타났는데, 등엔 숯이 바리바리 실려있다.
말떼를 모는 사람은 겨우 두 명, 걸음걸이가 굉장히 빠르다. 비탈진 동네로 들어가니 한 할머니가 베를 짜고 있다가 우리보고 들어오란다. 젊은 여자 하나가 우리의 막걸리 비슷한 술을 내 오더니 같이 마시잔다. 맛도 그냥 막걸리 맛인데,원료가 옥수수인것 같다.
화려한 원색의 옷감을 짜는데,
아마 리수족이나 좡족의 전통의상을 만드는데 사용하나 보다. 꼬마 둘이 왔길래 악수를 청하자 부끄러운듯 황급히 달아난다.
다시 길을 나서서 논뜰로 오니 아까 말을 몰고왔던 사람들이 숯을 부리고 음식을 장만하고있다. 차량으로 따지자면 공영 주차장 쯤 될듯.동네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들은 3~4일쯤 되는 먼 산길을 짐을 싣고여기저기 다니는 `운수업자'라고 하며,읍내인 삥중러에서 시멘트를 싣고 내일 다시 다른곳으로 간다고 한다.현대판 `대상'이라는거다. 이럭저럭 시간이 흘러 돌아갈 시간이 되었기에 차에타고 `나는 현재 얼마나 문명화된 사회인인가,그리고 비록 초라하고 가난하지만 그들의 유유자적한 생활은 얼마나 여유로울까...'생각하며 꽁샨으로돌아왔다.박과 저녁을 먹고 쉬고 있으려니 밖에서 세차게 문을 두드린다. 놀라서 "어떤놈이야!" 하며 문을 여니, 이럴 수가! 뜻밖에도 박상서씨가 빙그레 웃고 서 있다. 오늘 그가 류쿠에서 꽁샨에 도착해서 호텔에 오니 프런트에서 한국인이 들었다고 해서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다짜고짜 달려왔다는 그다. 이 이역만리서, 더구나 이 오지에서 그를 만날줄은 상상도 하자못했는데, 이렇게 만날줄이야... 그는 현재 쿤밍에서 목재사업을 하고있는 40대 중반의 부산사람.다리의 문사장집에서 두어번 만나 술도 한 잔씩 나눈 마도로스 출신의 정이 많은 사내이다.특이하게도 20살 연하의 예쁜 북한여성과 결혼해서 사는데, 작년에 드디어 득남을 했단다. 조선족 통역을 내 보내고 우린 그동안 밀린 많은 얘길 나누었다. 우리가 두롱지앙에 못가게 되어서내일 류쿠로 나갈거라니,무슨 소리냐고 당장 이곳 현장(縣長)과 통화를 하더니 아무 걱정말고 차도 수배해 놓았으니 자기랑 같이 가잔다. 드디어 소원성취,만사형통이로고...12/14 토 맑음-두롱지앙(獨龍江)
9시경에 박상서씨가 통역아이를 보내서 깨운다. 난 벌써 7시에 일어나 있었는데...
자기차(일제 랜드크루저)를 수배했는데, 지금 피엔마쪽에 있어서 어쩔수 없이 자재싣고 들어가는 더블캡 트럭을 알아놨단다.자재를 싣는동안 기다리는데,국경 경비대장도, 우체국장도 모두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의 말로는 이런데서 사업을 할려면 기관장과의 친분관계는 필수란다.
이 트럭도 현장이 모텔을 짓는 자재를 싣고가는데, 웃기는건 현으로 오는 모든 보조금, 예산은 모두현장 제 멋대로 쓰고,그의차(토요타 지프)도 예산으로 사서 마누라나 자식들이 전용으로 쓴다고 한다.중국국경경비대장과 미얀마 수비대장은 서로 은밀한 거래를 하고,천연기념물인 비자나무의 벌채도 이들에겐 사욕을 채우는 수단에 불과하단거다(비자나무로 된 바둑판 하나가 우리돈으로 수백만원을 호가한단다).
11시쯤 출발하는데 우리 이외에도 중국인 부부가 운전석에 타고 적재함에는 16~17살로 보이는 두롱족 애들이 몇명 탔다. 검문소를 통과하는데,상서씨를 보더니 경례를 척 하고 붙인다.산중계곡을 끼고 차는 달리는데,내려다본 아래는 아찔 그 자체다.길가엔 몇백년은 실히 되었을 나무들이 우거지고,가지엔 묵은 이끼가 치렁치렁 매달려 있는게 `이런걸 보고 밀림이라고 하는구나'하며 감탄한다.꼭대기에 이르자 터널이 하나 나오는데,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넓이이다.
터널입구에 이르자 차를 세우고 운전사가 공사하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내려주길래 함께 내렸더니, 이런 칼바람에 맹추위다.산 군데군데에는 눈이 쌓여있고, 터널바닥도 온통 꽁꽁 얼어있다.
다른차 정비를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기에 상서씨와 나는 좀 걸어서 내려가기로 하고 먼저 출발, 또그 예의 상서씨 마도로스 시절의 무용담을 늘어놓는데,그의 얘기는 정말 들을수록 맜있다. 특히 스페인이나 남미쪽에서의 노랑머리애들과의 연애담은 정말 실감이 난다. 10리 정도를 걸어가도 차는 오지않고 조금은 지쳐서 길에서 나무를 주워 불을피웠다. 고도계는 3700m.약간은 숨도 찬데 바람까지 거세니 불이라도 숲으로 옮겨붇을까 걱정이어서 얘길했더니,그의 명쾌한 해결책 "불나면 행님하고 내하고 사형당하면 돼지예..." 무시라길가숲은 전나무, 참나무,소나무가 빽빽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중국은 지네 영토는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놓고 미얀마쪽 관리들을 꼬셔서 그쪽 품질좋은 나무를 벌채해서한국이나 일본에 수출한다고 한다. 도둑놈들... 한참을 기다려 우리 차가 왔는데, 앞서가던 차가 얼음 구덩이에 빠져서 옴쭉달싹을 못하고 있다. 여러사람이 돌을 나르고 흙을 퍼서 겨우 빠져나와서 얼마를 가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더 앞선차가 고장이 나서 길 한복판에 퍼질러져 있다.네대의 차가 오도가도 못하고 서 있어도 이런 일에는 익숙한듯 어느누구하나 당황해 하거나 초조해 하는 사람이 없다.단 두 사람의 이방인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나무를 해 오는가 싶더니 거기에다 기름을 끼얹고 즉석 캠프파이어가 벌어졌다.젊은애들은 노랠 부르고 우리차에 있던 부부는 분위기에 취한 눈치로 소로 몸을 꼬옥 맞대고 있다가어디론가 사라졌다 한참 후에야 나타난다. 상서씨가 그 꼴을 보고는 한마디, "행님, 야들이 변변한오락거리가 없으니, 밤만되면 그걸 한대요.요 기스나 머스마들도 서로 마음만 통하면 숲이고 어디고 구석진데서..." 그 말에 대꾸하는 박의 말이 더 걸작. "어이, 후배-알고보니 그들은 같은 해군출신으로 박은 해군본부에, 상서씨는 배를탔다고 했다.
기수가 박이 좀 빠른데, 그 이후로 이들은 서로를 선배, 후배라고불렀다-두롱지앙 가도 여자를 구할 수가 있나? 젊은애들 말야" 차 수리가 끝나고 비탈길을 허구허구 내려오니 돡시간이 새벽 1시. 잠자는 초대소 주인을 깨워 방에 들어서니 수상한 냄새. 랜턴을 켜던 박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세상에~ 방 한가운데 염장처리된 100kg은 됌직한 돼지 한 마리가 터억하니 엎드려 있다. 여주인을 불러 이걸 좀 치워달라니까 남편이 사냥나가고 없어서 못치운단다. 결국 옆의 창고같은 방으로 옮겼는데, 판자로 막은 벽에서는 찬바람이 솔솔 새어들고, 온도계는 2도를 가리키고 있다.
사발면과 맥주로 허기를 달래고 나니 상서씨가 여주인에게 양초를 있는대로 다 가져오라고 한다. 알고보니 그만의 난방수단.열댓개의 양초를 다 켜놓으니 이제야 방에 온기가 좀 도는듯 하다. 이게 짚불에 몸 녹이는 거지신세지... 상서씨의 농담에 박은 손사래를 친다. "선배님, 지금주인여자 남편도 없는데, 소개시켜 드리까예? 그 방은 따뜻할낀데, 몸 한번 푸시이소"
12/15 일 안개후 맑음-사라져 가는 것들
9시쯤 나와보니 사방은 안개천지.</pre><pre>거리는 마치 서부 개척시대를 방불케 한다.오가는 사람들 행색은 말할것도 없고,심지어 학교 교장이란 사람도 거지꼴에 주민 모두 키가 작다. 그래도 사람들 눈빛만은 맑고 예쁘다,담배나 계란등 외지인이 필요한 물건은 부르는게 값이고, 언덕배기에는 현장이 짓고 있다는 호텔
립이 한창이다.`이곳도 예외없이 길 사정이 나아지고 호텔이 문을 열면 외지인들로 북적대겠지...'어제 상서씨 얘기가 그저께 만난 여자가 혹 현장의 애인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한다. 리지앙에서 온 여자인데,현장의 애인이면서 꽁샨현지의 부자나 기관장과 하룻밤을 지내는데, 무려 1000원을 요구하는 여자란다.내 생각엔 그 여자가 아닌것 같았는데, 글쎄~볶음밥으로 아침을 먹고 되도록이면 일찍 나갈려고 서둘렀으나 결국은 오후에나 가 진다고 한다.두롱지앙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몇 개 있고,가끔씩 산길을 타고 다릴 건너는 아녀자들이 보여도얼굴에 문신을 한 여인은 찾을길이 없다.중국 정부에서는 소수민족중 가장 적은 숫자의 두롱족(약3000명)을 아예 천년 기념물 정도의 대접을 한다고 한다.내가 보기엔 그건 그들의 욕심일 뿐,그들도 교육과 복지혜택을 누릴 국민의 일원인데 왜 거주지역을 벗어나도 안되고 다른 종족과는 사귀지도 못한단 말인가?계곡의 물빛은 연한 옥색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그 속에서 순박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몇 년 만에 외지인의 영향을 받아 변할 생각을 하니 좀 측은하다. 싸늘한 기후에도 그들은 맨발로 다니는 사람도 많고, 설사 신발을 신어도 그냥 슬리퍼 정도인데, 발바닥이 마치 곰의 발처럼 투박하다. 두롱족은 언어는 있으나 문자가 없다고 한다. 꽁산(貢山)현의 누(怒)족과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전통복장은 검은색과 흰색의 줄무늬 두롱 담요이다.
이 천으로 왼쪽 어깨를 가리면서 몸을 둘러 옷을대신했고 밤에는 이불로 변한다. 본래가 전통복장이라고 할만한 어떤 것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외부의 영향을 받아 현대의 간편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롱(獨龍)족의 특징 중의 하나는 과거에 여자들이 얼굴에 문신을 했었다는 것인데, 지금도 문신을한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보질 못했고,
두롱(獨龍)족의 전통종교는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자연을 숭배하는 원시적인 종교이다. 하늘에 수많은 혼이 있는데,
그 혼을 '나무(納木)-우리의 발음과 같은게 신기하다-'라고 부르며 땅의 혼을 다스린다고 여긴다. 오후세시가 다 되어서야 드디어 출발을 한다. `오, 신이시여 가는 길은 아무런 문제없이 제 시간에 꽁산에 도착하도록 굽어살펴 주옵소서!' 돌아오니 프런트 아가씨가 한국사람 소개 좀 해달란다. 말씨를 조용조용하게 하는 아가씨인데, 상서씨 말로는 호텔 사장 조카인데,
자기만 투숙하면 퇴근도 않고 상서씨 방에서 세탁도 해주고 TV도 보고 조선족 통역과 놀다 가기도 한단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에게 시집가고 싶다고 한단다. 사진을 한 장 찍으니 다른 사진을 한장 쥐어준다. 자세히 보니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한 사진인데,원판(?)과는 너무 다르고 그 포우즈라는게 거의 할리우드 여배우 수준이다. 웃겨서... 12/16 월 맑음 상서씨가 차를 수배해 준다고 했으나 더 이상 신세지기 마안해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다. 9시 차로 표를 사는데, 류쿠로 바로가는 차는 없고 푸꽁(福貢)까지밖에 안간단다. 상서씨는 바쁘다고 표를 사 주고는 바삐 떠나고 우리도 드디어 이 소읍을 벗어난다.푸꽁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4시,
어쩔 수 없이 하루 더 묵기로 하는데, `
빈관'이란 시설이 정말 말도 아니다. 류쿠 정도의 도시인데, 특색도 없고 그냥 그런곳. 시내 구경을 하다 가든 비슷한 곳으로 한 잔 할까하고 들어갔는데,
여자가 있고 팁도 줘야 된단다.
여기도 목재, 약재 수집상들이 동네 다 버려놓았나 보다. 시장쪽을 기웃거리니 포장마차 처럼 무리지어있는 구이집.
그중 손님이 없는 가게에 들어가서닭날개,
두부구이등을 안주로 맥주를 마시는데, 의외로 매콤한게 맛이있다. 이 아가씨는 누족(怒族)이라는데,
권하는 술도 넙적넙적 받아 마시더니 이웃한 가게 사람들을 부른다. 외국인이 있으니, 의외인듯 끝없는 호기심. 그중 나이 든 여자가 장난도 하고 하도 호탕하게(여자답잖게)웃길래,
물어보니 이 아가씨 엄마란다.
그들의 노래도 듣고, 재밌게 놀다 돌아오는길에 호텔옆식당에서 바이구어를 시켰는데, 한참후에 나온것은 `갈비찜'이다.
그래놓고는 얼마냐니까 20원이라고 눈도 깜박않고 시침이다. 뭐, 특별주문이라서 그렇다나?
한참 실랑이 끝에 6원에 합의를 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와버리다.
12/27 화 흐림
어제는 밤이고 지쳐서 미처 못깨달았는데, 낮에보는 풍경은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찻길이 없을때도 사흘이나 걸리는 길을 걸어서라도 일부러 찾았난 보다. 직선거리로 따지면 겨우 몇 km쯤 되는 길을 한 나절 더 걸려 돌아서 돌아서 가는길... 길가에는 웬 이름모를 아름다운 폭포가 그리도 많은지... 7시 반경 무사히 꽁산에 도착해서 셋이서 식사를 하는데, 백주(고량주)두 병에 요리 다섯개, 밥이 모두 40원밖에 되질 않는다.상서씨가 없엇으면 이런 잔치(?)비용이 100원은 되었으리라. 피곤하다는 그를 쉬게하고 나이트로 갔으나 아무도 없어서 그냥 자기로 하다. 9시경 류쿠행 버스 탑승 조수석 바로 뒤에 앉은 앞의 여자애 하나가 우릴 꽤 의식하는것 같다. 머릴 묶었다, 풀었다 헤드뱅잉도 하고, 가끔씩 뒤로 힐끗거리며 백에서 사과를 꺼내서 껍질을 벗기더니 창밖으로 휙휙 날리고...
손 닦으라고 물티슈를 건네자 포장을 한번 보여달란다. 찍혀진 한글을 보다가 "너 어디서 왔냐? 일본인이냐, 한국인이냐?" 당돌한 질문에 한국인이라고 하자 자기는 첨에 중국인인줄 알았다고 한다. 또 말썽이 났다. 앞서가던 대형차가 또 퍼졌다. 타는속을 간신히 억누르고 차에서 내려 있으려니 이여자애가 저 멀리를 가리킨다. 오! 멀리 보이는 산 정상부에 뻥하니 뚫린 동공. 양수오의 월량산은 저리가라할 정도의 아름다운 산이 연봉을 끼고 누워있다.
그 산 이름도 `월량산'이란다. 산이 잘 보이는 전망대까지 가자는데, 우리가 거기 간 사이에 출발하면 어쩌냐고 했더니, 그럴 이유가 없단다.
알고보니 그 차가 자기 아버지 차란다.그래서 그 편한조수석 뒤의 특석에 앉았구나.
꺼려하는 박을 남겨두고 전망대에 서니 월량산이 정면에서 보이고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는 누지앙이 힘차게 흘러내리고 있다. 근데 얘들은 왜 이러지? 지가 그 경치에 취한듯 "슈슈, 워 샹 칭칭(叔叔,我想經經)" 하며 날 그늘진곳으로 끌고 간다.
세상에나... 내가 지 아버지 뻘인데, 이놈의 동네는 어찌된게 여자라고 생기면 어린것들이 당돌하게 키스를 먼저 요구하나... 그래 보시다. 이게 육보시가 아닌 `설(舌)보시다. 내가 네게 베풀어 줄것이 이것말고 또 있냐? 차 있는곳으로 오니 예의 도로 노동자 숙소가 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도로변에 비닐한 장 걸치고 나면 그게 그들의 잠자리다. 겨우 류쿠에 도착하니 거기서 루일리로 바로가는 차가 없단다. 할 수 없이 바오산을 거쳐 가기로 결정하다.
한시간 반쯤 시간이 남아 교통반점으로 갔더니 전의 우리 종씨 아가씨가 업무교대를 하다가 반갑게 맞아준다 짐을 맡기고 그녀와 누지앙변도 산책하고, 그녀의 언니가 하는 가게에도 가니 차타고 가면서 먹으라고 스트라이프와
해바라기씨를 한 봉지 건네준다. 뭘 팔아줄게 없을까 궁리하다 그냥 담배만 두갑 사고 나오려니 이방인인 나를 위한 배려가 고맙기 그지없다.
바오산 도착한 시간이 6시.60원짜리 방을 얻고 식사를 하러 시장통에 갔는데, 민물게 매운탕을 시켜서 밥을 먹었는데,
꼭 화개에서 먹던 그 매운탕보다 더 맛있는것같다. 2차는 옆의 가라오케로 옮겨 젊은 중국애들이 노래 하는걸 구경하면서 박수를 쳐주었더니, 여태 우리가 마신 맥주값을 자기네가
다 계산을 해준다. 음~ 역시 칭찬은 아름다운것이여...
12/18 수 흐리다 비
9시10분 루일리행 버스 출발. 이전에 텅충 갈때 가본 길이라 별로 감흥이 없다.
달라진건 바오산 공항이 전보다 훨씬 커졌다는것. 747이 뜨고 내려도 무리가 없을듯.
4시에 도착한다니 벌써부터 지겹다. 박은 그래도 란찬지앙(亂澯江)의 풍경이 신기한가 보다.도중에
들른 휴게소의 식사는 최악.박이 중국 상인이나 사람들 대하는 태도가 눈에 많이 거슬린다.
저러다 시비라도 붙으면 나까지 곤란해질텐데, 영 안하무인이다. 가는 내내 맘이 아슬아슬하다.
망시 정류장에 도착후 이놈의 차가 떠날 생각을 않는다.
도중에 사람들이 많이 내리니 기어이 좌석을 다 채우고 갈 모양이다.
결국은 일이 벌어졌다. 박이 화장실을 갔는데, 1원을 요구했나 보다.찌푸리면서 고함을 지르니 그 여자도 당연히 화가 났겠지.여차하면 한대 칠 기세의 박을 말리고 내가 1원을 던져주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중국인들의 인해전술(?)의 희생양이 되어봐야 그들의 억지를 느낄 수 있을런지...
덕분에 차는 바로 출발하고 루일리 가는 길가의 풍경이 북쪽과는 많이 달라졌다.
사탕수수를 가득 실은 트랙터와 트럭들이 지나다니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많이 바뀌었다.
루일리는 루이리강의 동편에 위치한 아열대 기후의 국경 마을로 쿤밍으로부터 839km 떨어진 곳에 있다.루이리는 일명 '안개의 도시'라고도 부른다.
겨울이면 아침안개가 자욱하게 일고 오후가 되면 양산을 써야 할 정도로 햇볕이 뜨겁다.
시장에서는 따이족 여성들이 온갖 색상의 비단옷과 수박 같은 과일을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루이리는 미얀마, 라오스와 접경한 경계무역이 성행하는 곳이다. 미얀마의 무스(Muse)와 남캄(Namhkam)이 인접해 있어서작은 상품박람회 같은 시장이 선다. 한 지역에 두개의 나라와 세개의 도시가 공존 한다고들 말한다 .
론리의 정보대로 민족빈관에 가니 트윈을 50원 달란다. 2002년판 론리에는 30원인데...
40원으로 하자고 실랑이를 하는데, 통역을 자청한 노인이 온다. 70은 넘어보이는 영감의 영어가 유창하다.한 서양녀석이 내게로 오더니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자기친구가 서울에 사는데어쩌고 저쩌고 하는
녀석의 품새를 보니 얼룩반바지에 슬리퍼,
윗도리는 때에절은 무소매 런닝 차림이다. 국적을 묻자 우물거리며 영국이란다.
박에게 이녀석이 말을 걸어도 대꾸를 말라고 주의를 주고는 방으로 가서 샤워를 했다.
여기 기온은 거의 30도를 육박한다. 4원짜리 저녁을 먹고 거리를 걷다보니 유난히 안마하는곳이
고 호객을 하고있다. 여자 넷이서 마작을 하고있기에 혹시 술도 파냐고 물어보니 판단다.
라오반(사장)은 스물다섯정도? 종업원이래야 갓 스물을 넘겼을까...이런 저런 얘길 시켜보니 다들 태족이란다.안마요금을 물으니 한 시간에 50원이란다.
그새 박이 눈독들인 여자애가 있었나 보다. 키는 껑충하게 크고 날씬을 넘어서 빼빼 마른 눈도 커다란 게 한국서 같으면 한 인물 할 아가씨인데,박이 바디랭귀지로 얘를 데리고 나가면 얼마냐고 묻는다. 여자애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거리고,
라오반은 진지하게 200원만 주고 데리고 나가란다.
거리낌없이 손을 맞잡고 바로 옆의 오늘 개업했다는 호텔로 애를 데리고 들어가니 나는 졸지에 혼자 남은 낙동강 오리알.
라오반이 나도 셋중에서 제일 맘에드는 아가씰 골라서 가란다. 웃으면서 "워 부야오, 타 메이요
푸런, '워 요우 아이런(난 안해, 쟤는 홀아비이고, 나는 마눌있어" 라고 하니 나보고 푼수라네.한녀석이 굉음을 내며 오토바이를 타고 오더니 게중에 한 여자애를 낚아채듯 실어가고, 남은 우리 셋은 밤이 이슥하도록 술을 나눠 마시는데,
한 녀석이 나보고 돈 필요없다고 그냥 데리고 호텔방에서 재워달란다. "워 야오 닌더 라오반, 니 부씽!(너 말고 너희사장이라면 그럴게)"
내 말에 계집애는 샐쭉해지고, 라오반은 방금 잠깬 어린애를 내게 보이며, `나도 남편있는 몸이야.나는 않돼'라며 깔깔거린다.호텔 앞에서 양꼬치와 맥주 두 병을 더 비우고서야 선풍기가 삑삑거리며 돌아가는 방으로 들어와서
문득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들다.
12/19 목 비오다 맑음-농다오(미얀마국경) 아침부터 안개가 짙다. 박을 11시까지 기다려도 오질않아 혼자 국수를 하나 먹고 그가 들어갔던 호텔로 가니 거기서 리셉션 애들과 노닥거리고 있다.
하도 기가 차서 신경질을 부렸더니 야진-보증금-때문에 따지고 있다. 따지는거 좋아하시네~ 박의 말을 빌리면 그애(安蘭)은 거기 온지 사흘밖에 되질 않았는데, 잠자리에서도 촌티가 팍팍나더라나 뭐라나...
그래 겨우 열일곱짜리가 뭘 알겠냐? 지에고우로 향하는데 비가 온다. 국경으로 다시 트라이쇼를 타고 가니 거의 미얀마인들이다. 국경무역을 하는 삼인가 본데, 중국측 상품 꼬라지를 보니 조잡한 오디오, 오토바이,차량용 부품따위가 대부분이다. 보초를 서고있는 군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니 의외로 영어를 잘 한다. 사진을 찍고 보석상 거리로 오니 건물추녀밑에서 1마오짜리 카드판이 벌어졌다. 구경을 하려니 같이 하잔다. 근데, 얘들이 다 미얀마 인이었다.거기있는 남자에게 물으니 그녀들은환전상이란다.
자기는 미얀마 과자(또는 식품)을 중국에 내다파는 업자이고, 무스에 산다고 한다.주소를 적어주면서 미얀마 오면 자길 찾으란다.
유달이 눈이예쁜 여자애가 있어 말을 거니 환하게 웃으며 대꾸를 한다. 얼굴에 칠한 분가루를 가리키자,
피부가 좋아지고 그을지 않는 화장품이라 한다.그
녀와 점심을 먹기로 하고 식당에 들렀는데, 그녀를 잘 아는듯 중국애들도 반갑게 그녀를 맞는다.미인은 어딜 가도 이렇게 인기가 좋은거지...
밥을 시키니 밥은 비싸다며 자긴 국수를 먹겠단다.자기의고향도 무스(무세)인데,
저녁엔 미얀마로 넘어갔다가 내일이면 다시 이리로 온다고 한다.
밥을먹고 돌아가니 박의표정이 영 어둡다. 아침에 내가 친 호통때문인가, 아니면 자길 두고 혼자 가서 먹고온 식사가 문제인가?
비가 계속 오기에 호텔로 돌아와서는 로비에 있는 영감을 만나 정보를 좀 챙기고 돌아오니 그는 나가고 없다.
무료함에 어제 그 안마집에 가서 애들과 맥주를 좀 마시다가 어느새 갠 하늘을 이고 숙소로 오다.
12/20 금 흐리다 맑음 오늘은 농다오에 가기로 했다. 차비가 8원인데 의외로 거리는 가깝다.론리에는 39km로 나와 있는데, 20km가 채 안될듯 싶다.국경시장이라도 여느 중국 시골장과 틀리는 점은 못느낀다.미얀마 여인들의 싸롱(긴치마)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마치 미얀마에 온 기분. 군데군데 추수한 커피를 말리고 있었는데,콩이 꽤 크다.저걸 들들 볶아서 진~하게 한 잔 마셨으면... 커피는 수출만 하는지, 커피는 팔지않고 사탕수수를 많이 판다.1원어치 사서 나도 그들처럼 우적우적 씹으며 넓은 시장을 이리저리 헤메어 봐도 그리 흥미를 끌 거리는 없다. 하나, 대낮부터 만취한 사내하나가 비틀거리며 시장을 주름잡는게, `어디가나 저런 꼴통을 보는구나'하는 느낌정도. 개울을 넘어가면 미얀마인데, 왔다갔다 하다가 그것마저 시들해져 그만 돌아가기로 하다. 차를 기다리다 맛사지 집이 있기에 얼마냐고 물으니 15원이란다. 싸롱입은 여자애둘이서 우릴 뉘여놓고 안마를 하는데, 그새 박이 "나와 응응할래?" 어쩌구 하면서 여자애의 가슴을 만지니,애들은 꺅꺅거리며 소리지르면서도 안마는 끝까지 해 준다. 어느나라 사람이냐고 묻길래 민망해서 일본서 왔다고 하니 걔들도 고갤 끄덕인다. 대낮에 민망하게 시리...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혼자가 아닌데 너무 심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내 말에 단단히 삐쳤는지, `황금오리사원'에 도착할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설명과 달리 별 감흥도 안주는 절을 뒤로하고 루일리 강가로 향했다. 강변 광장에 갔더니 학생들이 신년 축하 퍼레이드를 위한 매스게임 연습이 한창인데,군에서 장교가나와서 같이 지도하는 모습을 보니 좀 낯선 기분. 애들이 행동통일도 되질 않고 이리저리 헤메는 품이 한국같으면 선착순 기합감이다.루일리 강은 폭이 많이 넓다.돌아오는 길에 나는 걷기로 하고 그는 차를태워 보냈다. 호텔에 도착하니 그는 비자만료기간이 다 되어서 샤관으로 나가야겠단다.굳이 비자를 연장하려면 여기서도 가능하단 얘길 하지않았다.무거운 짐을 벗은 기분으로 그를 7시 침대차로 태워보내고 나니홀가분해져서 샤워를 하는데 TV뉴우스에서 노무현이 당선된 내용을 내 보내고 있다. 그렇구나, 18일이 대통령 선거일이었구나... 그런데, 노무현이 당선 되었단다, 이외다!
12/21 토 맑음
9시 기상. 엊저녁 방에서 맥주를 마시다 로비에서 서양애들과 한 잔 더한게 탈이났는지속도 메슥거리고 영 개운찮은 컨디션.
체크아웃을 하는데, 영감이 왜 미얀마로 가질 않느냐고 의아해 한다.
그냥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길을 나서다. 빵차. 이 차 안에는 온통 사탕수수 씹은쓰레기가 널려있다. 북쪽 지방에는 해바라기 씨 껍질을 버리고, 여기선 사탕수수껍질을 버리나 보다.완딩 빈관에 묵을지를 결정 않고 짐부터 맡기고 길을 나서다. 언덕에 올라 미얀마쪽을 보니, 중국의 집들이나 길들과 그리 큰 차이를 못느끼겠다. 그냥 조그만 개울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은 국경검문소는 아예 무시하고 짐도,자전거도 그냥 어깨에 멘 채로 건너 다닌다. 완딩 빈관에 묵을지를 결정 않고 짐부터 맡기고 길을 나서다. 언덕에 올라 미얀마쪽을 보니, 중국의 집들이나 길들과 그리 큰 차이를 못느끼겠다. 그냥 조그만 개울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은 국경검문소는 아예 무시하고 짐도, 자전거도 그냥 어깨에 멘 채로 건너 다닌다. 아무래도 국경 검문소는 외국인과 차량 체크용인듯. 상류쪽 100여m를 올라가서미얀마쪽으로넘으니, 꼬마 둘이서 나를 쳐다본다.
선글래스를 끼고 옷차림새도유별난 사람이 넘어오니 신기했던 모양이다.내가 그들을 향해 빙긋 웃어버리자 그들은 냅다 동네를 향해 달아나 버린다.동네를 향해 어슬렁거리고 가고있는데, 군복비슷한 복장을 한 남자 하나가 오토바이를타고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이 사내는 내게 뜻밖에도 "취 나리(去那理)?"하고 중국어로 묻는다. `이크, 잘못걸리면 클나겠다.끌려가서 감금이라도 당했다면 새된다...' 중국인행세를 하는 수 밖에 없기에, 내가 광동에서 이리로 여행왔는데,여기가 미얀마냐, 중국이냐라고 선수를 치자 공민증을 보잔다."호텔에 두고왔다. 여기 아무나 오면 안돼냐"고 재차 묻자, 여기는 미얀마 이며, 현지인도 통행증을 가져야만 건널 수 있다고 자길 따라 가잔다. "두에부치, 두에부치, 워 부즈따오러. 셴자이 워 취 샹 중궈." -야, 몰랐어, 미안하다 나 지금 바로 중국으로 건너갈게-이런말을 남기고 중국쪽으로 돌아서서 냅다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녀석이 고함을 지르며 나를 부른다. `야, 너라면 대답하겠냐...?' 신발도 벗지않고 개울을 성큼성큼 건너는데, 등에서 진땀이 다 난다. 중국쪽에서는 벌써 많은 사람들과 국경수비대원이 모여있다. 군인하나가 왜 그러냐고 묻길래, 영어로저쪽에 동네가 있어 건너갔더니,월경했다고 지랄하네. 원래 못가냐고 묻자, 녀석이 한심한듯 "미얀마도 자주국가, 중국도 어쩌고 저쩌고..." 설교하는 그의 말을 자르고 "지금 호텔에 오는 친구만나러 간다.나중에 출국관리소쪽에 놀러갈게"라고 하니 거기 면세점에 술, 담배가 많이 싸니 살게있으면 오란다. 십년감수...시내로 와서 밥을시켜먹으며 주민에게 물어보니, 자기네들이 자주 가는 사원이 여기서 상류쪽으로 2km쯤 가면 있는데,거긴 문제 없을거라고 한다.절 이름을 메모하고 10원이나 주고 택시를 타고 가서 보니,에개, 무슨 절이 이렇게 작아? 거기도 국경이랍시고 계곡을 끼고 무슨 둑 비슷한걸 쌓아놓았는데, 그냥 형식적이다. 한참을 거기 앉았다가 승려가 나를 향해 다가오길래, 합장을 한 번 하고는 되돌아섰다. 하기조차도 싫은 아까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불법입국자로 억류라도 되는양이면 집에는 언제가며, 살인적이라는 벌금은 누가 내 줄것인가? 시내로 나가 국경 면세점으로 가보니, 판매하는것들이 모두 후진것들. 특히 눈길을 끈것은 호주산 오팔을 많이 팔고있다는거다.팬던트 하나에 50달러 정도.미얀마에 많이 나는 비취는 아예 취급도 않는다. 거기서 갑당 1000원쯤 하는 마일드세븐을 한 보루사고는 나와버렸다. 더 머물 이유가 없어 호텔로 가서 짐을 찾아 망시로 가서 쿤밍으로 가기로 마음을 굳히다. 일단 내가 우선 할 일은 베트남 비자를 받는것.그놈의 지겨운 침대버스는 또 어떻게 탈구~! 망시행 버스가 있어 덜렁 탔는데, 이놈의 차가 시내를 몇 바퀴나 돌고있다. 손님이 다 찰때까지 돌 모양인데, 그나마 쿤밍행 버스시간이 넉넉하니 어떻게돼도 되겠지... 그놈의 차비는 왜 또 이리 비싸지? 20원. 망시 도착후 터미널에 배낭을 맡기고 4원짜리 허판으로 배를 채우고 거리로 나서다. 그게 그거다.하릴없이 다니다 지쳐 버스에서 출발을 기다리기로 한다.쿤밍 도착시간이 5시30분이면 어디서 묵을지도 고려할 사항.차가 출발하기전 옆자리에 애기를 안은여자 둘이 탔는데, 애가 응가도 하고 너무 역겨워 조수에게 자릴 바꿔달라고 했더니,순순히 자기자 릴 내준다.착한녀석... 먼지투성이에 빤질거리도록 때가낀 시트, 이불은 시장통 거지의 것인양 냄새까지 난다.내가 슬리핑백을 꺼내서 펴니 다들 호기심이 동하는지, 어떤사람은 다가와서 만져보기까지 한다. 이 얇은게 무슨 이불이냐고 묻기도 하고... 오는 도중에 세 번의 검문이 있었는데, 첫번째 검문에서 양장을 입은 젊은 여자가 끌어 내려지고, 두 번째 검문에선 젊은남자 둘이 도 끌려갔다.알고보니 아편밀수 단속때문에 철저한 검문이 이뤄진다는데,내 생각으로는 여자는 그들의 심심풀이 희롱용으로,남자둘은 깨끗하게 차려입고 있으니 아니꼬와서 끌어내린것 같다. 고속도로에 진입해서는 시속 30km로 가다 쉬고 도 쉬고 하는품이 억지로 도착시간을 맞추기 위한듯.창가쪽이 너무 추워(칼바람이 들어온다)가운뎃 자리로 옮겼더니 너무나 비좁아 백을 둘 공간이 없어 백을 품고 몸을 누이다. 12/22 일 맑음 곤명에 도착했는지, 주위가 소란스러워 일어났더니, 운전자가 나더러 넌 외국인이니 지금 나가면 위험하다.그러니 날이 밝을때까지 차속에 있다 가라며 차를 한 잔 나눠준다. 7시쯤 터미널은 나섰는데, 여기가 어딘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정류장 표지판에 `신남역'이라 써 놨는데,베이징로를 따라가다 둥펑둥루로 가는 32,60번 버스가 있다. 차화빈관에 가서 방을얻어 들어가니 호주에서 왔다는 까만 여자애 하나와 독일 여자애 하나가 자고있다.서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미시엔을 하나 먹다. 역시 쿤밍은 쿤밍. 플라타너스 잎은 지고 바람이 제법 분다. 그래도 내리쬐는 햇살은 여전히 따갑고.진비루로 가 보니 여기선 백화점마다 크리스머스와 연말연시 대목을 노린 판매전이 한창이다. 어제 좁은 침대버스를 탄 탓인지 허리 다리가 너무 아파 호텔로 돌아오니 독일여자애는 체크아웃하고 호주애가 쿤밍 일정을 묻는다.오늘 베트남 비자신청을 할거라니, 눈을 반짝이며 자기도 베트남에 갈거라며 베트남에서 같이 여행을 하잔다.나라고 나쁠 이유는 없다.우선 방값도 절약하고 의사소통에도 지장없이 같이 다닐 수 있으니... 그녀의 이름은 프라야. 폴리네시아계인듯. 그런데 머리칼은 검은색이다. 비자 발급신청을 하고 동풍광장에 갔더니 태족인듯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주고받는 노랠 하는데,멜로디도 재미있고 둘러서서 구경하는사람들도 가끔 웃음을 터뜨리고 하는 모양새가 내용이 재미있는것인듯.레코더로 녹취를 하고 그들의 사진을 찍다. 저녁먹을 생각이 없어 양꼬치에 맥주, 그리고 2차로 바에 가서 칵테일 몇잔, 그리고 쓰러져 자다.12/23 월 맑음 새벽 5시나 되었을까? 어떤 땅딸한 거지꼴을 한 서양애 하나가 들어온다. 놀라는 우릴보고 미안해 하며, 자기 배낭만 들여놓고 나가버린다. 또 얕은잠.일어나니 프라야는 나가고 새벽의 그녀석이 들어오며 싱글벙글이다. 독일인인데,방금 지 어머니가 부쳐준 소포를 받았다며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져있다. 담배, 코담배, 자잘구레한 온갖게 다 들어있다. 녀석은 카프만. 9개월재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배낭 가득히 넣어둔 때에절은 옷가지를 꺼낸다.론드리 맡길거냐고 물으니 지가 직접 세탁한단다.내가 친절하게도 가루비누를 주며 욕조에 빨랫감을 넣고 사정없이 밟으면 된다니, 연신 `That's a good idea!'라며 나중에 한 잔 산단다. 오랜만에 pc방에 가서 멜 확인도 하고 답장도 쓰다.카페에 올린 글에는 리플이 하나 가득 달려있다.`보난자'라는 친구는 내가 하노이 가면 대우호텔이 좋으니 거기서 묵으란다. `누굴 돈병철이로 아나,거기 하루 묵을 돈이면 베트남 한 달 여행비다. 이사람아...' 리셉션에서 오고가는 사람 구경하기, 그리고 아가씨들과 농담따먹기. 곤호 반점보다 얘들이 훨씬 친절하고 영어도 잘 한다. 방에 돌아오니 독일녀석이 고마웠다며 담배를 한갑 쥐어주는데 보니 노필터이다.맛을 보는 순간 캑!이렇게 독할 수가~이자식은 이 담배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지 엄마께 보내달라고 했단다. 맥주를 함께 마시면서 얘길 들어보니 프라야에 대해서 잘 안다. 티벳에서 몇 번이나 봤단다. 얘기도중 북경에서 공부한다는 한국애들과독일 프랑스애들 그룹이 휴게실에 들이닥쳤다. 걔들에게 다리,리지앙,중디엔 정보를 주고 문사장과박에게 메시지를 전해줄것을 부탁하다. 방에 들어가니 프라야가 속옷 바람으로 이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뭐냐고 물어보니 `요가'란다. `지랄, 넌 요가할때 팬티 브러지어 차림으로 해야 폼이 나냐?' ******************************************************************************** 그 후 호주여자애와 베트남 입국을 시도하다 중국당국에서 베트남으로 얘의 불법성을 통보하는 바 람에 졸지에 저까지 입국거부를 당했다. 알고보니 그녀는 인도 타밀족 출신 호주인이었는데, 얘가 티벳 독립운동에 관여하는 NGO멤버였다네 . 걔는 방콕으로 가고 (강제출국)나는 난닝갔다가 해남도를 가려 했었는데, 배를 못타서(파도땜에) 유주를 거쳐 계림으로 갔다가 북경으로,연태로 해서 1월 중순경에 이 여행을 마무리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