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실크로드여행기(2003)

시안, 화샨(西安,華山)

베싸메 2005. 6. 7. 17:36

10/23목


7시쯤 잠을 깨었는데, 아무도 일어나는 기척이 없다. 엊저녁부터 장쑤성에서 철도청에 다닌다는 녀석

이 또 영어로 말을 걸어 온다.귀찮아서 다시 침대 올라가서 자는척을 하다가 정말 잠이 들고 말았다.

일어나니 차창 밖엔 흰 눈이 소복히 쌓여있고, 사막이다가 다시 시골 읍이 나타나고, 가끔씩 큰 도회

도 나타난다.멀리선 설산이 계속 기차와 함께 달리고...

바깥 풍경 사진을 찍으려니 차창이 너무 지저분해서 안되겠다. 세면장 문을 열고 찍자니 찬바람 들어

온다고 아우성이고... 카이슈이(開水-뜨거운 물)가 떨어져서 사발면도 못먹고 1시가 지나서야 4번 기

찻간 까지 가서 물응 가져왔길래 허겁지겁 먹다. 그러나 폼은 한껏 잡아야지.

이제 한 역만 지나면 산시성(陝西省)이란다.우리 침대칸의 중국인들의 면면을 볼까?

1;50세의 농사꾼, 이빨이 까맣고 입냄새가 무지 심하다. 동행과 뭔가를 쉴새없이 먹어대는데, 10

   원주고 샀다는 셔츠깃은 다 헤져도 먹거리만은 고급, 닭다리 튀긴것 6원, 백주 8원...

2; 49세 남자. 직업이 향도라는데, 뭔 말인지 모르겠다.비교적 젊잖으나 농사꾼과 먹고 마시는데는

    양보가 없다.

3;란저우서 내린 반짝이 드레스셔츠 입은 젊은녀석.시계줄을 한껏내리고(금시계) 걸핏하면 모바일폰

  을 꺼내서 만지작거리는녀석. 머리에 무스도 발랐는데, 졸부티 팍팍. 나보고 한국사람은 돈이 많은

  데, 왜 이런 보쾌를 탔냐고 시비거는놈이다.

  4;회사원이라는 30대 여자.이 여자는 기차에 타자마자 동내의바람으로 책상다리를 하고 온갖 말참

   견은 도맡아놓고 한다.란주 공업대학을 나왔다는데, 영어가 전혀 되질 않는다.

5;우리자리에 걸핏하면 와서 말 걸어대는 녀석. 스좌장(石家匠)철도학교 나왔다는데, 웃는 꼬락서니

   가 눈웃음을 살짝살짝 치면서 말끝만 올리면 영어가 잘하는걸로 아는 녀석.

6시, 마땅하게 할일이 없어 일기를 쓰고 있는데, 내게로 와서 연락처와 이멜 주소 가르쳐 달란다.

전화번호와 멜 주소를 내 멋대로 적어주고 쫓아버리다.


10/24 목 맑음

5시 40분 시안 도착해서 걷고있는데, 뜻밖에도 권형이 저만치 배낭을 메고 비척이며 가고 있다가 내

가 어깰 탁 치니 깜짝 놀란다. 세상에 거의2000명 가까이 와글대는 인파속에서 그를 발견하다니!

그는 아예 감격의 눈물을 글썽글썽...그는 투르판에서 하루만 투어를 하고 시안에 하루바삐 오고싶어
서 서둘러 오는길이란다.

역전에서 여행사 녀석이 삼성급호텔 도미토리가 30원이라고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따라가 보니, 전에

묵은적이 있는 상더빈관(商德賓館)이다. 호를 내며 안묵는다고 하자 다른 호텔로 데리고 갔는데, 6

명이 묵는 방이다. 다시 상더빈관에 갔더니 아까와달리 트리플에 가란다.

"야, 내가 4년전에도 트윈에 20원만 주고 묵었는데, 뭐가 트리플이 30원이야? 트윈30원에 주든지, 아

니면 돈 도로 내놔!" 여행사 녀석은 그새 달아나고 없다.`네놈 커미션은 없네'

내 서슬에 떫은감 씹은 표정으로 트윈 방키를 건네고는 애꿎은 모니터만 걸레 세례를 받다.

권형은 잔다기에 혼자 혁명공원으로 나갔다. 우리 고동찜같은 죽과 만두 하나를 먹고 공원어귀에서

하는 국화 전시회도 보고 들어오니 그는 어느새 나가고 없다.

아까 만날때 보니 입에서 홍시냄새가 심하게 나던데, 또 해장하러갔나?

한 숨 자고나서 종루로 갔다가 초시(超市-수퍼마켓,또는 쇼핑몰)에 가서 신라면도 사고 성벽에 오르

다. 서쪽 끝까지 2km쯤 가서 내려온 후 연호공원에 가니 벌써 연(蓮)잎과 줄기는 다 시들었다.

싱칭공원으로 가니 벌써 해가 지기에 숙소로 돌아와서 호텔알 양루촬 가게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다.

그와의 인연이 묘하다. 그의 사위가 민사고(民族士官學校)교사인데, 딸래미가 대학2학년때 녀석에게

꼬시켜서 결혼을 했다는데, 강문근이와 같은 학교에 재직중이라는게 놀라웠고, 서로 친구이며, 권형

도 강문근이를 잘 안다고 한다. 한국가서 꼭 다시 만나자며 또 한 잔.



10/25 금 맑음

8시경 일어나 화산행 버스를 타러갔더니, 차가 없단다. 기차표를 사고나서 보니 화산행 차는 모두 관

광버스라는걸 깨달았다.시간이 남기에 속 풀려고 콰이찬(快餐-패스트 푸드점)에 갔는데, 마땅한게 없

어 그냥 프레시 쥬스한 잔. 어제 과음탓에 속이 쓰리며 울렁거린다.

내 앞자리에 서북대 법대 다닌다는 여학생이 탔는데, 내가 중국에서 당한 부당한 경험담을 얘기하니

마치 자기가 그랬는양 미안해 하며 연방 `아이엠 소 쏘리'이다.

대화를 하다가도 표현이 안되면 아이엠 쏘리, 내 전자사전을 사용하라고 했더니 신기한듯 호기심을

보인다. 같이 앉아가는 영감과 화산역에 내렸는데, 역전 초대소가 너무 비싸 화산까지 바로 가기로

하는데, 지혼자 쏼라쏼라 흥정을 하더니 타란다. 그리고는 도중에 내리면서 20원을 주란다.

이 사깃군 같은 영감탱이가 내게 차비를 덮어씌우고 자긴 공짜차를 탄거다. 그것도 한참 길을 돌아

서... 별 얌체를 다 보네ㅠㅠ

화씬 빈관. 성수기라서인지, 160원 달란다. 부씽(不興)을 연발하며 80원으로 깎았는데, 버스 못타고

온게 후회스럽다. 오후에 화산 오르는걸 포기하고 쉬기로 하다.

동네구경. 밭에 심어진 감나무엔 홍시가 하나가득. 돌멩이로 홍시를 털어서 주워먹으니, 그야말로 꿀

맛. 개울을 건너갔더니 자그마한 학교가 있다.학교에 들어서니 애들이 몰려오고, 이때 나타난 여자

가 자기 방으로 가잔다. 이 학교의 교장. 집무실이며 침실인 그녀의 방은 형편없다.

학교 사정에 대해서 그녀는 선생 11명에 애들이 98명인데, 예산이 없어서 죽을 지경이란다.

담배도 권하고 차도 권하는 그녀의 눈빛은 순박하다. 선생들을 다 불러 모으는데, 모두 여선생.

기념사진을 찍어달래서 한 컷 하니 나와도 같이 찍잔다.

한 선생이 홍시를 한 소쿠리 가져 오더니 이 지방 특산이란다. 우리동네도 이런게 많다고 하자 정말

이냐며, "맛은 우리게 더 있을걸?"이라며 자랑. 글쎄...

1시간 여를 거기서 보내다 나오려니, 홍시를 비닐 봉투에 담아주며 가져가서 먹으란다.

자기 남편이 `삭도 초시'를 하는데, 물건 살 일 있으면 거기서 사란다.

돌아오는길에 오토바이 한 대가 내게로 오더니, 어디가냐길래 건너 호텔촌으로 간다고 하자 대뜸 타

란다. 가는길에 태워주는줄 알고 탔더니 호텔앞에 오자 돈을 달란다. 자기 오토바이는 빠오처(抱車-

영업용차량)이란다. 내가 그냥태워주는거 아니면 그곳까지 도로 태워달라니까, 녀석이 그러자며 날

태우고 돌아가는것처럼 한 바퀴 돌며, 얼마있냐고 묻길래 `1원20전'있다니까 그거라도 달란다.

호텔애들이 그 꼬락서니를 보더니 깔깔거리며, 원래 오토바이는 한 번 타면 5원인데, 나보고 굉장하

단다. `누가  태워달랬나 뭐...'




10/26 토 맑음

4시경 잠을 갰다가 다시 잠 들었다 7시에 일어나다.

식당가에 가서 조면을 먹는데, 5원이란다. 게다가 챠오즈 1개 1원, 역시 관광지는 어디 가든 비싸다.

하기야 놀러온 놈 돈 못베껴먹으면 바보지, 그리고 장사가 아니지...

어제 저녁 교장 남편이 한다는 가게에 갔었다면 거기서 놀다 오려고 했는데, 불꺼진 상가는 암흑천지

였기에 찾기를 포기했었는데, 오트밀 5원, 물 3원, 이런식이니 부아가 치민다.

문표70원, 케이블카 왕복110원.산행차비20원. 딱 200원이네...

본전생각 나지않게 할려면 철저히 화산을 즐겨야지.산 초입에 들어서자 마자 입이 딱 벌어지는 풍경.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맑은 계류, 깎아지른듯 서 있는 화강암으로 된 산군.마치 북한산 인수봉을 몇십

개 가져다 놓은듯 규모가 큰데, 게다가 단풍도 절정이다!

황산이 좋다한들, 계림이 좋다한들 이렇게 남성적인 기세의 산은 아니었다.

북봉에 오르기전, 가이드 아가씨가 내게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잘됐구나 하고 "I'll follow

you, because I can't read map written in Chinese" 라니, 슈어란다.

두 남자를 위한 가이딩인데, 내가 공짜로 따라붙으니, 이 두녀석 표정이 별로이다.

이런 저런 설명 친절해서 좋고, 우험한 곳에성 손까지 잡아주니 더더욱 좋다. 아쉽게도 그녀들은 북

봉을 끝으로 하산을 하고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서봉, 남봉을 차례로 순례. 여기서 운해를 감상하

는 행운은 내게 오질 않는가 보다. 장가계는 완벽했고, 황산도 아쉬운대로 보았는데, 여기선 운해대

신 칙칙한 박무(薄霧)다. 그래도 좋다 2000m 가 넘는 이 산정에서,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정자

와 호텔들을 보며 중국인들의 끈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길이 될 수 없는곳에 길을 내고는 게다

가 자연석을 다듬어서 계단까지 만든 솜씨라니!동봉이 저만치 보이는데 더 이상 힘이 남아나지 않는

다.30분쯤을 갈림길에서 쉬며 통박을 굴리다 포기를 하기로 하다.

하산후 호텔에 오니 아침에 케이블카에서 만난 남자가이드(녀석은 영어는 물론, 일어까지 하면서 내

게는 `안녕하시오'라고 해서 나를 놀래킨 녀석이다)를 다시만나 그들 단체 여행객들 밥먹는데 끼어

공짜밥을 얻어먹고 아까 화산에서 만난 여자 가이드와 전화연결도 해준다. 얘는 오늘 시안으로 돌아

가는데, 내가 화양에서 하루 묵으면 자기도 화산에 남아있겠다는걸 나중에 연락주기로 하고 정주로

바로 가겠다니까, 남자 가이드를 시켜 역에 전화해서 정저우행 차 시간을 알아봐 주라고 한 모양이

다. 얼굴 예쁜 애들이 꼭 그만큼 친절하다니까...

택시로 화산역에 도착하니 5분여 시간이 남았는데, 여자역무원이 해바라기씨를 한부로 뱉으며 1원을

주면 휴게실에서 쉴수 있고 개찰 할 필요가 없다며 가잔다. 내가 미쳤냐? 불과 5분을 거기서 쉬려

고 1원을 투자하게.차를 타니 온통 화산 다녀오는 패키지 관광객 차지다. 옆자리의 가족중에 유난히

중년여자가 카드놀이를 하면서 떠드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아예 귀마개를 하다.

쾌속열차를 탔으니 9시쯤 도착하겠다는 내 짐작과는 달리 차는 10시 반이나 되어서야 도착했는데, 마

땅한 곳이 없어서 초대소로 가서 20원주고 싱글을 하나 얻었는데, 복도 건너편의 중국인들 다인실을

보고는 까무라칠뻔 하다. 세상에, 침대가 20개 정도 다닥다닥 붙여놓고, 여자들의 악다구니.

얼른 방으로 들어오니, 옆방에서 나는 남녀가 내는 수상스런  소리, 샤워장은 화장실이나 다름없어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서 맥주를 마시다 다시 두 병을 사들고 와서 마시고는 피곤에 절어 쓰러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