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 목 맑음.-드디어 장강 삼협에 들어서다.
어제 중국술 반 병을 마시고 잤더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바쁘게 컵라면 하나를 해치우고 밖으로 나서니 강폭이 50m도 안될 정도로 좁아져 있다. 여기가 말로만 듣던 장강 삼협 인가 보다.
1,2,3층을 바쁘게 오르내려도 너무 절벽들이 가까이 있어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어거지로 셔터를 눌러도 애석하게도 좋은 경치는 모두 역광이다. 사진이야 안나오면 어떠랴, 내가 직접 보았는데!
젊은 친구 하나가 말을 걸어오는데, 내가 가진 쌍안경, 카메라, 카세트, 전자사전이 모두 신기한 모양.
나를 찍어달라고 카메라를 맡겼는데, 아무도 사진을 찍을 줄 모른다.
흔들고, 수평유지 안되고, 그냥 포기하다.
무산, 동파, 봉절에 차례로 정박하는데, 봉절에서는 무려 네 시간을 머문다. 유비 사당이 멀리 보이지만 혼자서 그곳까지 갈 연두가 나질 않는다. 내가 내린 사이 배가 떠난다면? 그건 안 될 일이다...
중국 서민들은 정말 흥미롭다. 아무도 내게 접근조차 않다가 누구 하나가 나와 같이 있으면 순식간에 우릴 에워싼다.
내가 불편함을 호소할라 치면 나름대로 애를 써 주는 것이 고맙다.
저녁식사때 2등실 아줌마에게 반찬이 짜서 못 먹겠다고 했더니 기어이 날 데리고 가서 다른 도시락을 사 준다. ‘나는 밥만 있으면 돼요’ 라고 하고 싶지만 중국어를 알아야 하지...도시락 속의 곤약 같은 찬이 맛이 있다. 한참 저녁을 먹고 있는데, 신사복을 입은 두 사람이 열쇠로 내 방문을 열고 갑자기 들이닥친다. 내가 놀라서 “What's matter? who are you?"라고 마구 뱉어대니, 둘 다 당황해서 도망가 버리고 한참 후에 말쑥하게 차려입은 내 나이 또래의 중년이 들어왔다.
알고 보니 봉절에서 타는 내 방을 같이 쓰는 승객이다. 아까 쫓겨 갔던 두 녀석을 다시 불러 이래라 저래라 시키는데,선원을 불러서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자기 침대 시트까지 갈라고 요구한다.
게다가 날 보는 시선도 영 곱지 않다. 나도 질세라 녀석에게 곱지않은 시선을 보냈는데, 짧은 영어로 내게 어디 사람이냐고 묻는다.
“I'm a Korean, but I wanna know why you ask me about my nationality?" 그러자, 녀석은 느닷없이 활짝 웃으며 내게 악수를 청하며 ‘한구오 펑요우’ 어쩌고 한다. 알고 봤더니 녀석은 내가 쓰고있는 ‘미치코 런던’ 모자를 보고 날 일본인으로 오해했던 것.
종전의 두 녀석은 자기 부하 직원이며, 봉절에 유적을 관광하고 오는 스촨성 쯔공시의 공산당 부위원장이란다. 건네준 명함을 보니 그는 하길섭이며, 건축 설계사이다.
여러 가지 얘길 나누다 내가 가진 볼펜에 그의 시선이 머문다. 내가 이걸 대만여행 갔을때 샀다고 하자, 느닷없이 중국과 대만, 한국과 북한의 통일문제로 발전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친구는 앞으로도 양국(중국,대만)의 통일은 요원하다며 어쩌면 한국의 통일이 빠를수도 있단다. 나보고 듣기 좋으라고 한 얘기인지, 아니면 그의 본심인지는 모르겠다. 중국이 아름다우며 사람들이 친절하며, 언젠가는 세계를 제패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추켜세우자, 이 친구의 입이 헤벌쭉해진다.
그나저나 나만의 왕국은 이제부터 없다. 지금부턴 책상도 세면기도 공동사용, 침대만 제각각이다. 피곤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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