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
시내버스를 타러 나오려는데, 누님이 밀폐용기에 삶은 계란을 챙겨 준다. 어젯밤 매형과 나눈 술이 뒷골을 약간 땡기게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처남 매형이 한 잔 나누는 건 당연지사. 서울로 가버린 남매의 빈방을 보면 너무 맘이 짠하다는 누님의 말이 맘에 걸렸던 밤.
국제페리 터미널에 도착해서 여행사 직원을 찾으니 아직 도착 전이란다.
좀 있으려니 아가씨가 왔는데, 날 알아보고 좋은 좌석 배정 가능하단다. 고마운 것, ㅎㅎ
승선 후 배가 물을 가르며 물위를 나른다. 파도는 좀 있으나 견딜 만하다.
11시30분, 하카다 도착. 짐칸에서 배낭을 내리는데, 500 엔짜리 동전이 떨어져 있다.
이번 여행에서의 약간의 행운을 기대해 본다. 19번 버스를 타고 역으로 오자마자 5시 2분발 나가사키행 특급예약. 부두,
이미그레이션, 세관, 역무원, 모두 너무 친절하고 싹싹하다.
나가사키에 내려 유스호스텔 가는 길을 묻는데, 역전 육교에서 카세트 틀어 놓고 춤추는 젊은 애들에게 대충 방향만 묻고 걸어가고 있으려니
중학생쯤 되는 꼬마가 지도를 보더니 호스텔이 자기집 옆이라며 함께 가잔다.
언덕배기에 위치한 유스호스텔, 조식 불 포함 2,800엔. 시설이 많이 낡았다.
수학여행 왔다는 한 무리의 여학생들, 내가 묵는 방엔 6인실인데 3인 투숙 중.
한 젊은이는 오토바이로 전국일주를 하는 나고야생, 하난 미야자키에서 온 마른 몸매의 청년. 욕실엔 돌로 만든 욕조에 샤워시설이 있다.
고교밴드부원이라는 고교생과 또 다른 오토바이 여행자와 이런 저런 얘길 나누며 목욕을 마치고 식당엘 가니 수원서 왔다는 한국 아가씨가 밥을 먹고 있다.
초밥세트와 컵라면을 먹고 있기에 내 라면도 꺼내서 함께 식사.
호스텔 주인장에게 진로소주 두 팩을 건네자, 답례라며 맥주 세 캔을 준다.
룸메이트들이 들어 왔기에 가져온 소주와 맥주로 합동파티.
하카다에서 나가사키로 온 도중에 본 풍경에 대해서 나눈 얘기, 신사의 느낌, 깨끗하게 정돈된 농촌, 산에 울창한 나무가 부러웠다는 얘길 나누다.
5/26
07;00 체크아웃, 역까지 걸어 가서 구마모토행 기차예약.멀리 산위의 전망대에 올라 나가사키 전경 감상.
뷰 포인트마다 역사,풍물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 다시 내려와서 역으로 향하고 있는데,일요일에 소학교에서 운동회를 한다.
이채롭다. 한국에서도 본받을 필요 있을 듯.
500엔짜리 1일프리패스를 사서 전차로 원폭피해중심에 가다. 느낀점은 좀 씁쓸.
지네들 원폭피해를 입은 과정은 생략한채 반 인륜적인 원폭을 터뜨린 미국을 씹는 삘 이랄까...
사진이나 피해자료는 일본인 답게 잘 전시해 놓았으나 내 맘엔 안 닿는다.
헤이와 꼬엔을 보고 나오는데, 성당에서 결혼식을 한다. 좋은 구경거리, 파이프 오르간이
훌륭. 답례품을 나눠 주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 신랑신부가 완전 일본 토종(?) 답다.
오란다 언덕과 유원지, 그냥 그런곳, 흥국사 갔다 메가네 바시에 갔는데, 얕은 개울물에
한가로이 노니는 짚단만한 잉어가 한가롭다.
역에 가서 짐을 찾아 기차를 타고 가이드북의 구마모토 관련 숙소를 찾아 보니 마땅한 곳이
눈에 뜨질 않아 아까미즈(赤水)가는 오나행을 타고 아소로 가기로 결정.
근데 이건 역마다 서는 완행. 너무 시간이 걸린다... 다른 승객의 전화기로 아소팜 유스호스텔 예약 시도했으나 직원이 영어를 못하고
난 일본어를 못하니 결국 포기. 직장시절에 일본어공부 열공 않은걸 후회. 10시경 아소역 도착. 시내에서 이리 저리 물어서 민슈쿠(民宿)에
묵기로 하다 5,000엔! 이거 출혈이 심하다. 그래도 싱글에 포근한 잠자리, 운치있는 온천,
아침밥... 바깥에 나가 맥주 한 잔 사와서 마시고 잠자리... 근데 유카다 입고 잘려니
영 불편하네.... 역시 난 팬티바람으로 자야 되는 듯.
5/27월 맑음
닭이 우는 소리에 잠을 깨다.6시... 좀 더 자야 하는데, 아침을 먹자는 주인과의 약속.
소탈한 밥과 된장국, 반찬 몇 가지. 푸짐한 맛이 없으니 좀 섭섭. 게다가 숟가락 달라니 없단다. 외국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걸까?
숟가락 비치해 놓지 않은 이유가? 터미널 가서 짐을 맡기고 아소산행 버스에 올랐는데, 대만 젊은이 둘이 타고 있다.
이들은 어젯밤 여인숙에서 나카무라(中村)여인숙에서 둘이서 3,500원에 잤단다.
8시45분 아소산을 향해 버스가 오르는데, 분화구까진 안 간단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가의 경관은 훌륭하다. 끝없는 초원과 짙고 키 큰 삼나무 숲...
날씨 때문에 분화구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 운행도 안하고, 분화구는 아예 출입금지. 첫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아소 유스호스텔앞에서 물어 보니 이미 구마모토행 완행이 5분전에 떠나고 2 시에 벳부행 급행이 있단다. 하릴없이 아소 시내를 배회하기도 그렇고(배회란 것도 없이 넘무 작은 동네) 동네 뒷산에 올라 공동묘지 터에서 죽은 이들의 비석이나 보다가 준비해간 빵으로 점심을 때우고 내려 온다.
벳푸행 열차에 올라 빈자리를 찾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 오는 강한 경상도 사투리. 앞자리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길 나누다 보니 두 청년중 하나는
후배 H의 조카이고, 다른 하나는 고향이 울산 백천인데, 휴일을 맞아 유후인으로 가는 중이란다.고향후배 H는 나르 잘 따르는 친구인데,
나와는 한때 재수를 같이 했던 녀석이니, 우연치고는 참...
녀석들을 꼬셔서 벳부로 함께 가기로 하다. 셋이면 많이 즐거우리라... 이 친구들, 비즈니스호텔에 가자는 걸 벳부 역전에서 온천 하면서 잘 수 있는 곳으로 가길 권하다.
1,500엔에 온천과 숙소해결이 되는데 더 생각할 여지가 없지 않은가? 짐을 맡기고 지고쿠온천에 갔는데, 문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 서둘러 보고 나오다.
도쿄에 있는 친구가 마지막 날이라고 거하게 한 잔 하잔다. 회, 덴뿌라, 게장, 솥밥등을 그득 먹고 나니 계산이 26,800엔! 셰어 하자고 하니,
“삼촌, 그 돈으로 맛있는거 드세요” 한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숙소에서 온천 후 다시 진로소주 파티. 옆자리 사람들에겐 쬐금 미안하다.
5/28 화, 맑음
어젯밤 과음한 탓에 일어나니 10시.차시간 까지 온천을 하다가 녀석들은 하카다로, 난 오니타행 기차를 타기전에 역으로 가서 ‘아점’, 식사비는 내가 내다.
오이타행 기차는 급행. 그런데 오이타에서 유후인 가는 기차는 우리의 70년대 통근 동차 수준. 아무렴 어떠하리....오히려 천천히 달리니 스치는 농촌풍경도
정겹고 우리산세와 너무 흡사한 풍경이 날 매료시킨다. 눈에 띄는 특징은 산에 자라는 나무가 한결같이 푸르고 늙은 나무가 많다는 것.
유후인 역에 내려서 긴린코호수 쪽으로 가는 길옆의 상가가 참으로 아기자기하다.
근데 물가 수준이라는 게, 내겐 조금 무리. 그냥 발길 닿는 대로 이리 저리 흘낏거리며 걷다.
‘긴린코’ 라는 이름이 金隣湖-금빛물고기비늘의 뜻이라는데, 약간의 과장인가?
다시 하카다로 돌아가는 길엔 고속버스를 타다. 과음한 후유증인가, 몹시 졸립다.
자고 일어나니 하카다 니시데츠 터미널. 역 가까운 곳에 비즈니스호텔로 체크인 후 씻고
나카스까지 걸어서 맥주와 라멘. 일본 직장여성들 틈에 끼어 이런 저런 얘기.
한국 사람이 이렇게 영어를 잘 하냐는 물음엔 아연실색. 지가 못한다는 생각은 않고...
호텔 들어와서 고단한 몸을 누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다. 내일 배 시간에 맞춰 나갈 일만 남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