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 일 흐림
오랜만에 피워 보는 게으름.죽과 라면으로 식사를 하고 배를 타러갔다.
혼자 여행중인 `Terry Choi' 란 여잘 만났는데, 서로 다른 배를 타게 되었다.
영어를 아는 유일한 사람을 만났는데...작은 섬으로 가는데, 같이 탄 사람들이 내게 흥미가 많다.내가 그들을 보면 딴전을 피우다 내가 다른곳을 보면 유심히 쳐다보는, 그런 스타일.
배젓는 여자애는 17세쯤 되어 보이는 모수오족 아가씨인데, 통나무를 파서 만든 무거운 배를 젓기엔 너무 가냘퍼 보인다.내가 등려군 cd를 들려주니 너무 좋아한다.
같이 탄 중국인들은 그녀에게 노랠 시키고, 아주 높은 톤의 그들 민요를 멋들어지게 부른다.그러면서도 내 cdp에서 눈을 떼지 않는게 많이 아쉽나 보다.
큰 섬으로 건너가니 홍콩여자가 날 기다리고 있다. 자기도 혼자만의 여행이라면서, 이 호수의 분위기가 너무 좋단다. 30세의 이 여자는 디자이너라는데, 결혼했냐고 물어볼 용기도 필요성도 느끼지 않아 윈난성 여러곳에 대해 서로의 느낌을 주고 받으며 물가에 늘어진 배나무의 배도 따 먹고, 그녀가 사주는 향으로 예불도 드리다.
숙소에서 한 숨 자고 동네를 거닐다 내친김에 사천성까지 가 보려 하였으나, 길이 너무 외지고 혼자라 용기가 나질 않는다. 여자들이 말을 끌고 와서 초해로 가자는것데, 50원이란다... 마다하고 다시 산 기슭쪽으로 가니 삭정이와 소나무 낙엽을 긁어서 이고 지고 오는 여자애들을 만났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나뭇짐을 팽개치고 냅다 웃으면서, 비명을 지르며 산쪽으로 달아난다. 우리의 어린 시절 우리 누이들이 이랬었지.
길로 나서 동네 꼬마와 희망소학도 가고 다시 닝랑족으로 8km쯤 걷다가 되돌아 오다.
좀 있으니 바람이 불고 사천성 쪽으론 비가 내리는데도 관광객들은 꾸역 꾸역 모여 든다.
이 사람들은 어딜 가나 먹는걸 손에서 놓는 법이 없는 듯, 배를 타고도 쉴새없이 먹어대며 찌꺼기를 그 깨끗한 물에 마구 버려댄다. 온 동네 사람이 세탁을 하고 음식물 찌꺼기를 버리고 해도 이 순결한 호수는 늘 이렇게 깨끗한 물을 유지한다는게 신기하기만 하다.
저녁에 밥 한 공기와 밭에서 따온 고추를 스프에 넣어서 먹었더니, 아주 상큼하다.
군시절 길가의 풋고추 하나로 짬밥맛을 일신시키는 그런 기분이다.
아내와 통화를 하고 숙식비를 계산하는데, 모두 57원, 방값이 20원 씩인데, 어젯저녁 식사비가 15원.좀 비싸다, 어째 너무 호화판이더라니...
저녁에 맥주나 한 잔 마시고 일찌감치 자고 낼 아침 곤명으로 나가기로 하고 밖으로 나섰는데, 홍콩 여자가 포장을 둘러친 가게에서 날 부른다. 어떤 노인과 앉았는데, 그는 광동 사람이며 모수오족의 생활을 연구하는 학자라 이곳에 여러번 왔고 지금도 장기체류중이란다.
웃긴건 통역 시스템. 나는 영어만 알고, 홍콩여잔 광동화,보통화와 영어, 영감은 광동화, 모수오족 주인은 보통화. 내가 영감에게 말 한 마디 하거나 주인이 나나 영감에게 한 마디 하면 홍콩애가 중간에서 한 단계씩 거쳐서 이른바 3자 통역을 해야 한다.
음식을 시키는데, 또 예의 개구리 구이. 홍콩녀가 내게도 먹기를 시도하자고 했으나, 내 비위론 도저히 불가능하다. 얘가 이런다. “Mr. Kang, you try aet it. it's so delicious!"
방금 못먹겠다고 퉁기던 그녀는 어느새 통개구리 마니아가 되고, 난 그냥 연근구이, 감자구이만 먹고 있으니, 나보고 베지테리안(채식주의자)냐고 묻는다.
영감이 주인여자와 남편에게 노랠 시키고, 길가 이층 방을 향해 소리치자, 어떤 젊은이가 부리나케 피리를 들고 뛰어온다. 바야흐로 우리만의 전속 악사가 생긴 거다. 얼마나 흥에 겨웠던지, 시간이 12시를 넘어 한 시가 다 되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문이 잠겼다. 큼지막한 나무 대문이 마치 원님댁 대문같아 보여 불콰한 기분에 냅다 몇 번 걷어 찼더니 한참 후에야 문을 열어 준다.
거실에 주인여자, 운전사, 샤오지에 와 한 사람이 같이 술을 마시고 있는데, 운전사ㄱ의 복장이 예사롭지 않다. 어젠 그냥 바지 차림에 수수했는데, 귀걸이도 큼지막한걸 달고, 흰 블라우스에 검정 롱 스커트. 내가 지나는 인사로 “你是票湸”이라고 하니, 얼굴을 살작 붉힌다.
양치질 하러 내려 오는데, 그녀가 내게 손짓하며 쪽지 하나를 건네 주며, 손은 입에 댄채
자기방을 가리킨다. 내 방으로 돌아와 불빛에 비춰본 종이에는 “我愛你”라고 쓰여 있다.
가슴이 두근 거린다 아니, 쿵쾅쿵쾅 방망이질 친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담배를 재빨리 한대 피우고는 고양이 걸음으로 복도를 건너 그녀의 방에 들어섰다.
깜깜한 방안에서 우린 서로를 '확인'했다. 감동, 재미, 이런 건 옳은 표현이 될 수 없다.
9/17 월 리지앙-비, 루구호-흐림, 닝랑-맑음
6시 40분 쯤 눈을 떴다. 뒤이어 마당에선 경적이 울리고, 배낭을 주섬주섬 챙겨 내려가니 그녀가 남들이 눈치못채게 살짝 웃어준다. 나를 뒷좌석에 타라고 하더니 호숫가 도로를 달리며 숙소마다 경적을 울려댄다. 젊은 친구가 하나 탔는데, 둘이서 뭐라뭐라 하더니 녀석이 대뜸, “운전사가 하루 더 묵었다 가라고 하는데?” 라며 영어로 얘길 한다.
잠간 생각을 해봐도 그게 아니다 싶어, 나는 오늘 리지앙까지 나가서 친구를 만나야 되니, 어쩔 수 없고, 연락처를 적어주면 내가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면서도 맘속으론 갈등이 생긴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조금 안쓰럽다.그럭저럭 승객이 다 타고 출발을 하는데, 홍콩애가 저만치서 버스를 세운다.
내 옆에 앉으며 한참 조잘거리는데,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입장이 난처하다.
애써 잠이 오는 척 눈을 감고 있는데, 북경녀석이 홍콩 여자애에게 운전사와 나의 일들을 소곤대며 얘기하는 것 같아 보여 부담스럽다.
닝낭에 도착하니 예의 북경 녀석이 다시 내게 “넌 차비 안받는다고 하네?”라며 말을 건네는데, 아, 민망한 내 마음이여! 홍콩애가 나중에 홍콩 들르면 연락하라고 주소와 전화 번호를 줄땐 그녀에게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리지앙행 버스에 탔는데, 한참 있다 그녀가 비스킷과 과일을 가득 사서 창밖에서 내게 건넨다. 그리고는 차가 떠날 때 까지 계속 날 주시하고 있다.3시경 리지앙에 도착했는데, 비가 많이 내린다.
사쿠라에서 된장찌개 하나를 먹고 샤관(다리)행 차를 타러가니 4시 반에 간단다.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는데, 어떤 후줄근한 녀석이 오더니, 내게 자기 담배를 하나 건네며 내 담배를 하나 달란다. 한 개피 꺼내려는 순간 이 자식이 갑째 내걸 나꿔챈다.
깜짝 놀라서 소릴 지르니숙박객을 기다리던 샹그리라애가 뛰어 오더니 녀석을 발로 차고 머릴 때리며 내 담배를 도로 뺏어 건네 주며 뭐라고 하는데, 아마 또라이쯤 되니 신경쓰지 말라는 뜻인 듯.샤관 도착7시 반. 역으로 가서 10원 싼 상포(上胞)로 사다. 이거라도 아껴야지... 역에서 볶음밥을 사먹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이리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기차에 오르니 스위스 남녀가 말을 걸어 온다. 여행8주 째인데, 계림, 베트남, 홍콩, 네팔로 코스를 잡았단다. 비행기값만 해도 만만찮을걸? 그새 영국에서 왔다는 빼빼 마른 영국여자애까지 하나 와서 맥주를 건네는데, 마실 기분이 안난다. 캔을 따서 지가 한번 빨아먹고 얼굴 찡그리며 나보고 주는 그 심뽀는 뭔가? 내가 사양하니 스위스 녀석이 얼른 받아 마신다.
오면서 버스간에서 많이 잤는데, 잠이나 올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