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실크로드여행기(2003)

쿠처(庫車)

베싸메 2005. 6. 7. 17:43
               



 

10/16 목 맑음
아침에 세수하러 가다 투르판에서 만난 한국청년을 만나다.
이 친구 벌써 쿠처와 이닝을 거쳐서 여길 왔다는데, 사리무호엔 가 보지도 못했단다. 
그리고 낼 란저우행 잉쪼어(硬座-딱딱한 의자)를 예매했단다. 
세상에, 2박3일을 90도 의자에 앉아간다고?
만두로 아침을 때우고 둘은 신장박물관 특별전을 보러갔다. 
알본애들이 `마미,마미'하던 미이라 전시다. 
마꾸도나루도(Mcdonald), 마미(mummy) 이자슥들 발음이란게 영~ 주로 고대 왕조의 미라인데, 
사막지대에서 발굴해서 그런지,상태나 옷감이 잘 보존되어있다.입장료는 무려 25원, 사실 좀 아깝다.

숙소에서 짐을 찾고 역에 가서 모험을 하기로 하다. 
아비달이 타고가는 T688을 잉쪼어로 살 수 있었다. 그나저나 나도 죽었다...
차를 타고보니 2층 차, 앞에 앉은 한족녀석이 차에 오르자마자 
음식 보따리를 펼쳐놓고 아구아구 먹어대기 시작하니 건너편 여자도 이에 질세라 보따리를 펼친다.

순식간에 차안은 고량주, 양고기, 생선냄새로 가득 차는데, 다른 사람들은 거의 무신경.
튀긴 갈치먹던 여편네는 손가락까지 쭉쭉 빨아제끼고, 
내 자리에선 놈의 친구들이 몰려와서 카드판이 벌어졌다.
참다못해 내 자리로 온 녀석에게, 자기 자리가 어디냐고 물으니 무쪼어란다. 
어디까지 가냐니까 카스까지 간단다... 
차비 아낄려고 무좌에 카스까지라니, 내가 참아야지 하고 빈 좌석으로 옮겼는데, 
위구르 소녀 하나가 나보고 자꾸 웃으며 말을 거는데, 내가 니네 말을 어떻게 아냐?

 



*란저우서 카스로 돈벌이 가는 자매*
두 자매가 앉았는데, 이녀석은 집이 란저우 란다. 
카스에서 안마집에 일하는데 동생도 기술 가르친다고 지금 데려가는 길이라고 한다.
사진첩을 꺼내서 보여주는 가족사진을 보니 할아버지부터 대가족이다. 
그 사진을 보는 소녀의 눈은 벌써부터 가족을 향한 애정을 담뿍 담고있다. 
게다가 차안에서 아예 동생에게 안마교육을 아주 진지하게 시키는 품이 
그래도 언니랍시고 의무는 다 하자는 맘인거같아 
내맘이 뭉클하다.
철없는 동생은 앞으로 닥쳐올 고생이 뭔지도 모르고 마냥 생글거리며 기차여행을 즐기다 
언니품에 스르르 안겨 잠이 든다.
10/17

새벽 05;30도착한다던 차가 60;20 에야 도착.
시내까지 갈려면 또 택시를 타야한다. 교통빈관에 갔더니 아예 문을 걸어놓고 모두 자고있다.
10여분 실랑이 끝에 문열고 하는 계집애 말 한 마디, 
"메이요우(沒有)" 떠밀리다시피 거리로 나와 캄캄한 새벽길을 불켜진 초대소마다 들어가봐도 
모두 외국인이라고 받질 않는다.
]
다섯번째 초대소에 가선 아예 방 보여달라고 하고는 그냥 들어가서 옷부터 벗으니, 
주인녀석이 어이없다는듯 15원만 달란다...중국인 하나가 먼저 들어있는데, 
새벽부터 줄담배에 바닥에 가래 뱉기.
내가 불을 켜고 일어나 지랄지랄하니까 멀뚱하게 날 보며 "워 쯔다오르(我知到了)" 한 마디.

 


*이들의 주식 난*

 


*빨간 계란*

10시경 일어나 바자르로 가다. 다시 1번 시내버스로 단결교 까지 가니 무지 큰 바자르가 있다. 아무나 지나가면 자기 사진 찍어달란다. 찍은사진을 모니터로 보여주면 모두 우루루 몰려 환성. 양고기 볶음밥을 고기없이 먹고 버스터미널로 카스행 차편을 알아보니 쿠처는 경유지라, 좌석이 있을지 모르겠단다. 조때따! 초시에 가서 카메라만 들어가는 백을 하나 샀는데, 이게 작다. 맥주 몇 병을 들고 방에 가니 중국인이 나와 먹으려고 소시지, 햄, 그리고 백주를 두 병 사놓고 기다리고 있다. `넌 어떻게 하나같이 내가 못먹는거만 사다놨냐?' 여튼 우린 통성명을 하고 각자 사온 술로 `한중 친선대회를 가졌다. 녀석은 52년생, 지가 형이란다. 누구맘대로? 으르무치에서 사업차 왔다는 그는 의외로 순진하다. 아무데나 침뱉고 담배피면 2008년 올림픽도 물건너 간다니까, 한국에선 아무데서나 담배피고 가래 뱉으면 안되냐고 되 묻는다. "얌마, 벌금내거나 감옥간다!"는 내 말에 `알고보니 한국 그리 좋은나라 아니네 뭐...' 나원, 대화가 통해야 뭘 해먹지...


10/18 토 맑음

아침일찍 카스행 버스를 기다리다. 다행이도 침대버스에 자리가 하나.
카스도착할때까지 계속 잠.밤늦게 내린 카스는 조그만 도시다. 
빈관에 가니 파키스탄에서 왔다는 상인 둘이서 얘길 나누다가 날 보더니 숙덕거린다.
찬팅에 가서 맥주 3병. 사막길을 종일 달려 너무 피곤하다. 호주애를 만났는데, 
그저께 예청에서 외국인 피살사건이 있어서 자기도 꼼짝 못하고 여기 발이 묶여있단다. 
듣고 나니 안듣느니 못한 말... 우짜꼬!
**************카스에 대한 이야기, 지도에 소개된 정보********************
카스는 면적은 96㎢이고, 인구는 약 25만 4000명(1998)이다. 카슈가르(Kashgar)라고도 한다.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카슈가르강(江) 상류, 파미르고원의 북동쪽 기슭에 위치한다. 
주민은 위구르족·한족(漢族)을 비롯하여 총 17개의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전체 인구 중 웨이우얼족이 75.5%을 차지한다.

타림분지 서쪽에 위치하는 오아시스 도시이며, 예로부터 동서 문물의 접촉지, 
동서교역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우루무치[烏魯木齊]와의 거리는 96km이며, 
연 평균온도는 11.8℃이고, 연강우량은 121mm이다. 
난장[南疆] 제일 도시로 난장의 경제, 교통 중심지이자 농업·축산업의 물자 집산지이다. 
중앙아시아로 나가는 실크로드의 요지이며, 1999년에 개통된 쿠하철도와 314번, 
315번 국도가 지난다. 
톈산남로[天山南路] 와 북로가 합류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BC 2세기에 한(漢)이 서역과 교역하였을 때 도시국가가 형성되었는데, 
한 당시에는 소륵국(疏勒國)이라고 하였다. 
당(唐)의 지배를 거쳐 11세기부터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영향을 받았고, 
다시 차가타이한국·티무르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티무르왕조 몰락 후인 16세기에 카슈가르한국이 수립되자 수도가 되었다. 
청(淸) 때에는 반청독립운동을 일으켰다. 
1860년 러·청조약으로 시장이 개방되자 러시아인의 왕래가 많아졌고, 
그밖에 인도인·아프가니스탄인 등이 혼거하면서 교역에 종사하였다. 
시가지는 카슈가르강 남동안의 한성(漢城)인 수러[疏勒]와 북안의 회성(回城)인 수푸[疏附]로 
나뉘는데, 합쳐서 카스시(市)를 이룬다. 1952년에 카스시가 설치되었다. 

인도·러시아 연방의 교역 중계지로서 곡물·목화·생사·과일 및 가축·피혁제품 등이 집산되며, 
공업으로는 기계, 방직, 화학, 도자기, 가죽가공 등이 발달하였다. 
중·소학교 86개가 있으며, 문화재에 산샨퉁[三仙洞]과 샹페묘[響妃廟:1640 건립], 
아바허쟈마차묘[阿巴和加麻札墓]등이 있으며, 
수푸성(城) 중심부에 있는 아이티차[艾提] 대사찰을 비롯하여 많은 사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