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중국여행(20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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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싸메 2013. 4. 5. 16:02

 

10/7 일 흐림

7시30분 단동 도착. 민박하라는 삐끼를 뿌리치고 교통따샤에 갔더니 228원이란다.

하는 수 없이 핫샤워 땜에 억지로 100원에 깎아서 들다.

10시쯤 압록강 공원으로 가서 유람선을 타고 신의주 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가서 그들을 보니 강변에 나와서 하릴없이 웅크리고 중국쪽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손을 흔들어도 그냥 멍하니 바라만 본다. 어떤이들은 낚시도 하고, 애들은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는데, 경비정 벽에는 온통 김정일 찬양 문구 일색이다. 검은 색의 목선은 모래에 처박혀 비스듬히 좌초되어 있고, 강변엔 중국에서 안보이도록 짙은 가로수를 심어놨다. 그런다고 그들의 가난한 모습이 가려질까? 그들이 측은해졌다. 신의주쪽으로 향하는 다리 입구엔 식량을 실은듯한   북한 트럭들이 줄지어 있는데, 평양트럭은 그나마 깨끗한데, 함북 번호판의 트럭들은 하나같이 고물이다. 그나마 운전사 녀석들의 깜냥은 그런대로 봐줄만한 수준.

강변에서 유니폼을 입은 젊은 북한 여성들을 만나 인사를 건네니 그들이 날 슬슬 피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들이 남한사람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들키면 비판을 받아야한단다. 이후 북한사람을 많이 봤어도 나 자신이 께름칙해서 아예 말을 붙이지 않기로 하다.

호텔로 돌아와 좀 쉬다가 ‘항미 원조 기념관’ 이란 곳으로 가다. 말 그대로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도운다는 뜻인데 궁금하던 차였다.미국이 중국쪽 압록강 철교를 폭파한 것, 세균탄 투하, 중공군의 한국에서의 전과, 김일성, 박헌영의 친필 등... 미국이 세계 인류의 철천지 원수로 묘사되어 있다. 거기서 한국 말 소리가 들려 돌아 보니 조선족 여자 하나가 한국인 여행자 두 사람을 데리고 한참 열을 올려 설명중인데, 내가 인사를 건네자 자기 집에 묵을 것을 권한다. 한국인은 광주서 왔다고 하는 데 건방끼가 뚝뚝 흐른다.60대쯤?

호텔로 돌아와서 집으로 전화를 하는데, 이것들이 또 막무가내로 안된다기에 하는 수 없이 IC카드를 사서 결국 전화를 하고민박집에도 전화해서 내일 아침 9시에 호텔에서 만나기로하다. 구운 오리 다리 1개에 고량주, 맥주를 마시고 잠들다


10/8 월 맑음

아침 일찍 잠이 깨어 짐 정리를 하고 민박집 아줌마를 기다리다. 9시에 픽업하러 왔는데, 그녀의 아파트는 압록 강변에서 가까운곳. 역이나 정류장이 많이 떨어져 있는게 흠이다. 그런데 잘때는 또 다른 아파트로 가란다. 알고 봤더니 거긴 손님이 차서 부득이 그들의 살림집으로 가서 자야 한다는 거다. 어쩔 수 없지.오전에 좀 쉬다가 시장 구경을 하면서 사진을 좀 찍고 점심을 먹는데 오랜만에 김치와 고추장을 먹으니 살것같다.

그녀의 아버지가 한국동란 때 중공군으로 참전하다가 죽었다는데, 아직도 그 영향에서 못 벗어났는지 남한정부에 감정이 많다. 그러면서도 밥을 먹기 위해선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민박도 쳐야 되고, 참 아이러니다...

오후에 금강산 공원(錦剛山公園)으로 올라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정상에 올랐는데, 신의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고층빌딩도 눈에 띄고, 시가지가 꽤 넓다. 하기야 도청 소재지이니 그럴만도 하지.내려 오다 연못에서 낚시하는걸 지켜 보다가 집까지 걸어왓 밥을 먹다.

그집 딸과 그녀의 친구와 함께 잠을 자기 위해 살림집으로 와서 한국 위성방송을 보니 중국 조선족이 한국으로 밀항하다가 25명니 질식사 했느니,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했느니 온통 시끄러운 소식 뿐이다.티브이를 끄고 그녀의 친구와 맥주 4병을 나눠 마시면서 얘길 해 보니 26세의 이집 딸과 방송대학 동기란다. 그런데 딸래미는 조선족이면서 나보고 ‘아저씨 너’이딴 소리로 한국 말이 서툴다. 나원 참...

 

10/9화 비

일찍 일어나 밥을 먹으러 가니 광주에서 온 사람들은 벌서 심양으로 떠나고 난 오룡산 공원으로 가기로 하고 준비를 하는 중에 아줌마 얘길 들으니 마음이 심란하다.

눈물을 흘리며 하는 얘긴즉슨 그녀의 3자매가 한국의 김회장이란 사람에게 6300원이나 사기를 당했단다. 그녀 동생이 친지들에게 돈을 빌려서 겨우 마련한 돈을 그에게 건네주고 초청을 기다렸는데 이 사람이 부도를 내고 잠적을 했단다.모화에 공장이 있고 지금은 남부 경찰서에 수감되어 있는것만 알고 있단다. 그녀 여동생들은 이혼 당할 처지라 집에도 못들어가고 그녀집에 얹혀 지낸단다.

10시 반쯤 집을 나섰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오룡산 입구에 도착할 즈음에는 점점 더 세차게 퍼붓는다. 어쩔 수 없이 시내로 다시 돌아와 중국은행으로 환전하러 갔는데, 정확히 12시부터 식사시간이라고 1시에 다시 오란다... 환전 후 걸어서 집에 와서 마리, 해연에게 편지를 쓰다.

이집 딸에게 우체국을 물으니 같이 가잔다. 말을 시켜보니 꽤 얌전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빨리 영어와 한국어에 능통해 져서 한국 회사에 취직하는게 꿈이란다. 우체국 들른 후 냉면 한 그릇을 사먹고 사우나를 하는데, 마사지까지 38원, 싸고 아주 깨끗하다.


10/10 수 맑음

6시경 아줌마로부터 전화를 받고 짐을 챙겨 터미널로 나서다.8시 20분 발 대련행 버스.

이번 중국 여행의 마지막 코스이다. 차가 출발하는데 시트가 온통 젖어있다.배낭에서 방석을 꺼내서 깔고 앉아서 한국 상인 잡지 ‘진달래’를 읽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말을 걸어 온다.첨엔 조선족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탈북자이다.올해 35세, 탈북한지 3년째 되는데 지금 단동쪽에서 공안이 단속을 나와서 지금 대련으로 피신하러 가는 길이란다.

한국의 친척을 찾기위해 여러군데 부탁을 했으나 여태 성과가 없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다. 돈을 벌어서 중국 공민증을 사서 한국에 갈려고 하는데, 돈이 모이지가 않는다고한다.

나더러 어떻게 통역이나 가이드 없이 혼자서 여행을 하냐며 신기해 한다. 아마 그녀는 대련에서 자기가 날 도와주고 돈을 벌고싶은 모양. 점심때 휴게소에 내려 식사를 할려니 그녀가 싸온 밥이 많다고 같이 먹잔다. 몇 번 사양을 하다가 결국은 같이 먹게 되었는데, 김치와 탕수육을 쌌다.일하던 식당에서 비상식으로 싸 주었다고 한다. 내가 미안해서 사과를 두 근 사서 억지로 그녀 백에 넣어주니 고마워 한다.7시간의 여끝에 대련에 도착, 그녀가 나서서 민박집을 알아봐 주겠다며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전차로 역전까지 같이 따라온다.

거기서 조선족을 만나 방을 정하고 그녀가 나서 명함을 달라고 하자 민박집 여자가 왜 그러냐고 묻는다. 그녀를 보내고 집으로 오는 동안 민박집 여자는 탈북자들과는 되도록이면 접촉을 않는게 좋다며 그래서 자기가 따돌렸단다. 역에서 1km쯤 떨어진 아파트 단지인데, 단동보다 약간은 열악하다. 이미 들어온 조선족 사업가, 젊은데 꽤 젊잔다. 7년만에 여기서 고향친구를 마났다고 한창 정담을 나누고 있다. 짐을 정리하다가 마리가 선물로 준 그림을 단동에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단동으로 급히 전화를 해서 대련으로 차편으로라도 좀 부쳐 달라고 부탁을 하고 시내 구경을 나섰는데, 매우 깨끗하고 사람들도 많이 세련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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