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5 목 비
중국에 오고는 늘 흐리지 않으면 비가 내린다. 투먼(圖門)으로 기차를 타고 오다. 하르빈행표는 미리 사놓고 국경으로 가서 언덕에 올라 북한 남양쪽을 보니 온통 칙칙한 색깔의 건물에 사람들은 느릿 느릿 오가고, 뒷산엔 나무가 하나도 없는 벌거숭이. 중국쪽은 온통 새로 들어서는 건물에 사람들도 활기찬데, 같은 민족으로서 비애감이 든다.
언덕에서 내려 오는길에 한국여자애를 만났는데, 배에서 본 아가씨이다. 언덕 정자에 가는 요령을 알려 주고 검문소를 지나치려는데, 조선족 병사가 인사를 하며 쉬다 가란다. 살구도 나눠 주고 내가 갖고 있는 보이스레코드를 보더니 이 조그만 기기에 테입은 어디 있냐고 묻는다. 내가 테입 대신 메모리가 들어 있다고 하자, 못 믿는 눈치. 이녀석이 가장 고참인 듯 한족 사병들은 그냥 우리가 하는 모양을 지켜만 보고 있다. 시간이 남아 훈춘으로 가기로 했다. 도문강을 끼고 북한을 마주보며 계속 달려간 훈춘은 그냥 도시, 용호각을 보고는 너무 아니다 싶어 도문으로 돌아오다. 러시아쪽 국경으로 가보고 싶었으나 시간 낭비일듯 싶다. 박물관을 찾았으나 물어 물어 찾아 간 곳은 도서관. 맥이 다 풀린다. 인터넷 카페에서 메일 체크. 기차에서 아까 그 한국아가씰 만났는데, 자기는 러시아로 빠진다고 한다. 조선족 노인에게 한국 옛 노랠 들려 줬더니 감회가 깊은 듯, 내 MP3를 돌려 줄 생각을 않는다.
7.26 금 맑음
한국아가씨와 역에 내렸는데, 자기는 가이드북에 있는 대로 공안국 초대소에 묵는다고 같이 가잔다. 여기 저기 물어도 모두 고개만 설레설레, 내가 도저히 못찾을거 같으니 다른데 묵으라고 찾아준 곳은 ‘선철 초대소’ 4인실 20원인데, 넓고 너무나 깨끗하다. 이런 식으로 혼자서 러시아 여행은 어떻게 할 지 걱정이 된다. 나는 싱글룸이 있는 근처 빈관으로.30원.
태양도에 갈려고 나섰는데, 공사중이라 12시에야 들어갈 수가 있단다. 다시 다운타운 쪽으로 나오니 러시아풍의 건물들이 많이 눈에 띈다. 소피아 성당도 보고 사진도 찍다가 다시 태양도로 가는데, 배 타러 가는 길에 조그만 다리를 하나 건너는데1원이란다. 강변엔 흑탕물에 수영을 하고 보트를 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시 시내로 가서 흑룡강 일보 창간 기념공연을 1시간 쯤 보다가 숙소로 돌아 오니 한국아가씨가 다녀 갔단다. 내일 731부대를 같이 가잔다. 소피아 성당 근처 노점에서 생맥주를 마시는데, 컵 보증금이 10원이다...
7.27 토 맑음
1시에 731부대로 약속을 하고 별로 할 게 없어서 일하는 애를 꼬셔서 세탁기로 세탁을 하다. 731부대 입장료 60원. 겨우 건물 잔해와 사진, 서류 몇 점 전시해 놓고 이 돈을 받는 중국인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돌아오는 길에 아가씨가 러시아행 기차표를 구할 수 없다고 징징대며 다른 국경 넘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호소한다. 가기는 지가 가는데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내가 말이 통하지 않으면 조선족 하날 고용해서 역에 가서 잘 얘길 해 보든지, 아니면 여행사에 가서 의뢰하라니까, “선생님은 참 아는 게 많으시군요” 라고 감탄한다. 내가 아는 게 많은 게 아니라 네가 너무 아는 게 없다... 저녁을 같이 먹자기에 러시아식 레스토랑에 가서 볶음밥 ,샐러드, 연어구이를 시켰는데 맛이 있다. 종업원들도 거의가 러시아인 아니면 혼혈아들. 식사를 하면서 생음악으로 듣는 러시아 노래도 좋고...
7.28 일 맑음
8시 장춘행 열차에 오르다.차는 깨끗하고 쾌적하다. 12시 장춘 도착 점심을 먹고 위황궁으로 마지막 황제 푸이가 지냈던 곳. 그런데 입장료가 60원이다. 가이드북에는 10원인데...
모든곳의 입장료가 이따위다. 가이드북 정보가 부실한지, 중국놈들이 왕창 올렸는지, 많이 혼란이 온다. 푸이의 차 앞에서 민속의상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던 중국아가씨가 내게 말을 걸어 온다. 하르빈 공대를 갓 졸업했는데, 그동안 배운 영어를 써 먹고 싶다고 내게 가이드 되기를 자청한다. 나야 땡 잡았지,뭐 .2시간여를 같이 다니다 그녀들을 보내고 역으로 택시를 타고 돌아오다. 심양가는 좌석이 없어서 입석표로 차에 오르는데 무지 복잡하다. 겨우 시핑에서 자리가 나길래 앉을 수 있었다. 맞은편 좌석엔 조선족 젊은 부부가 9 살배기 딸과 함께 카세트를 들고 앉았는데, 한국에서 1년 정도 일을 하고 왔다며 있는 체 뻐기고 있다.
각각 싸구려 썬글래스 하나 씩 끼고... 심양 북역에 하차, 선철호텔에 방을 얻다. 에어콘 싱글 120원.슈퍼마켓 가서 백주 한 병,과일을 사 와서 방에서 마시고 잠들다.
7.29 월 비
6시에 깼다가 별로 할 일도 없으므로 다시 잠을 청하다. 덕분에 호텔에서 주는 공짜밥은 놓쳤다. 버스를 타고 고궁에 가니 여기도 입장료가 60원. 별 볼일 없을거 같아 그냥 돌아와서 냉면 한 그릇 먹고 숙소에서 죽치다.
7.30 화 맑음
잉쪼어, 차 안이 매우 덥다. 앞좌석의 두 중년여자는 아예 두 다리를 한껏 벌리고 앉았는데, 차마 보기가 민망항 정도이다. 심양서 공상은행 다닌다는 한 여자가 내게 자꾸 말을 걸어 온다. 직업이 무었이며, 왜 혼자 다니느냐느니, 아이들은 몇이나 되냐고 묻는다. 차창을 열고 가는데, 소음이 장난이 아닌데도 질문은 그칠 줄 모르고, 대답하는 나도 거의 고함수준.
오후 9시 반쯤 진황도 도착해서 철도초대소에 가니 180원을 부른다. 도로 나오는데, 한 삐끼녀석이 끈질기게 따라 붙는다. 조선족의 빈관에 가니 120원, 그런데 70원에 재워 달래니 안된단다. 화가 나서 삐끼놈을 쫓아 버리고 허름한 빈관에 30원에 합의하고 여권을 내 미니 라오반이 외국인은 안된단다. 옆 숙소 트윈에 40원에 들고 나니 온몸의 힘이 다 빠진다. 저녁도 거른 채 참외 두 근에 맥주 세병으로 피곤한 몸을 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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