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2004, 중국 귀주, 홍콩, 마카오

5 허코우(河口), 몽즈(蒙子)

베싸메 2013. 4. 8. 10:02

 

1/20 화 흐림

새벽부터 옆방에서 나는 소리가 나를 괴롭게 한다. 지네들은 놀러 와서 기분 내는 진 몰라도 적어도 옆방사람 마음도 보살필 줄 알아야지... 국수집에서 1원짜리 쌀국수, 오늘은 고명으로 닭고기를 듬뿍 얹어 주는데 참으로 맛있다. 10시에 허코우행 버스거 직행이 있다는데 주인녀석이 난샤로 나가면 차가 많으니 차라리 지금 나가는게 좋다고 한다.

놈의 말대로 합승차를 찾으니 여자운전사가 자기차를 타면 지금 출발하겠단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테입을 이리 저리 찾더니 이미자의 노래, 백년설 노래를 틀어준다.

그리고 비록 안개속이지만 사진을 찍고 싶으면 원하면 세워 주겠단다. 장갑을 벗으면서 그을린 손을 살짝 숨기는 것이 루구호의 반과의 로멘스를 되살리려 한다.

난샤 터미널에 경비가 말리는데도 당당히 차를 몰고 들어가서 날 내려주고 씩씩하게 악수를 청하는 여자의 속눈썹이 정말 길고 아름답다...

버스출발시각이 많이 남았으므로 배낭을 차장에게 맡기고 터미널 근처 배회.철광석 제련공장도 있고 대리석 공장도 많으데 그래서이지 강물은 뿌옇기 그지없다.

버스를 타고 신지에를 나오는데, 과속으로 내달리는 차가 무섭다. 4시경 신지에 가서 버스르 타려니 여기서는 허코우가는 차가 없단다. 검문소 장교에게 물으니 택시를 타란다. 함께 합승한 일행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는데, 한 녀석이 한국은 미국식민지라고 일행들에게 아는 척 떠벌린다. 내가 녀석의 뒷통수를 치며, 그럼 중국은 러시아 식민지냐고 화를 내니 이내 머슥한 웃음을 짓는다.

허코우 도착 후 빈관에 가니 별 좋지도 않은 방을 80원 부르길래 옆의 초대소에 가서 20원짜릴 얻다. 샤워후 밖으로 나와서 허코우 시내 이곳 저곳을 거닐다 퇴근해서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를 따라 국경까지. 그러고 보니 허코우에 사는사람 거의가 베트남사람과 얼굴생김새가 비슷하다. 아마 같은 민족인 듯.

 

 

 

 

1/21 수 흐림

어젯밤 베트남 변경상인들과 식당에서 나눠 마신 술이 과했던 듯. 머리가 많이 아프다. 시장에 나가니 변경무역상인들이 한창 거래중이다. 베트남에서 온 듯한 빈랑도 팔고, 중국쪽에서 사가는 건 거의 조잡한 전자제품.면세점 가서 담배 한 보루 사고 터미널 가니 몽즈가는 차가 오후에 있단다. 원래30원짜리가 춘절기간이라고 46원이란다.중국계 캐네디언, 스패니쉬2, 모두 쿤밍으로 가고 나 혼자만 몽즈에 내린다. 한쪽은 강, 한 쪽은 철로를 따라 국도가 달리고 또다시 험산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안개 투성이. 여태 덥다가 또 갑자기 추워진다. 온도계를 보니 5도. 그런데도 창밖의 옥수수와 바나나는 싱싱하다. 내가 추운날을 골라서 온 죄이겠지... 서양애들도 모두 폰쵸를 덮어쓰고 덜덜 떨고 앉았다. 멀리 폭포도 쏟아지고 멋진 숲에 한없이 넓은 댐도 지나고, 여튼 경치 하나로 위안을 삼는다. 한참후에 산을 내려 오자 저 멀리 평지가 펼쳐지고 길가로는 석류나무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터미널에 내려 보니 신시가지인데 휑뎅그레...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으려니 나를 태우고 온 기사가 오토바이로 시내까지 태워 준다. 고마운지고... 빈관에 가서 방값을 물으니 표준방280원. 이리 저리 빈방을 찾아 30분은 헤메다 겨우 ‘정차주숙’ 이라고 써진 레스토랑에 가서 물으니 윗층에 주숙손님을 받는단다. 방금 지어진 건물에 방도 깨끗하고 너무 맘에 들어 값을 물으니 20원이란다! 난 100원을 불러도 묵을 참이었는데, 게다가 8시 반에 가족끼리 춘절파티를 하는데 나더러 함께 식사를 하잔다. 식당에 아예 훠궈상을 차려 놓고 열 몇 명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고등학생인 듯항 애는 영어까지 좀 한다.. 알고 봤더니 두 자매의 가족들이 이곳에 모여 신녀파티를 한단다. 와인을 곁들인 식사. 여자의 여동생은 운남대 교수이고, 남편은 공무원... 나름 성공한 가족인가 싶다. 바이주에 노래까지, 남자는 내게 한구어 따거라며 추켜세우고, 기준 좋은 나는 노래도 한 곡조 뽑아댔다.

 

 

 

1/22목 흐리다 갬

9시경 주인여자가 문을 두드려 나가 보니 하루 더 묵을거냐고 묻는다. 오늘 체크아웃한다니 가족나들이를 모두 가니 함께 가든지 아니면 지금 방을 비워 달랜다.어제 고마웠다고 인사하고 남자의 승용차로 터미널 가서 짐을 맡기고 몽즈시내 구경. 남호공원으로 가니 각 단체가 가장행렬준비로 부산하다. 인민해방군부터 각 학교, 부녀단체까지. 인민해방군의 호위로 가장행렬이 시작 되고 울긋 불긋 요상한 복장을 한 남녀들이 코믹한 모습으로 거리를 행진한다. 호숫가를 따라 늘어진 수양버들, 여름엔 참 올만한 곳이라 생각되다.

다시 미러행 차를 타고 가닥 고속도로 한켠에 세워 주는데 여기가 미러란다.(彌勒) 겨우 삼륜차로 시내에 와서 방을 얻는데, 표준방이란게 엉망이다. 게다가 이 큰 건물엔 투숙객이 나밖에 없는것 같다. 몽즈에선 방이 없고 미러엔 사람이 없다? 겨우 낡은 현대식 커다란 건물에 있는 빙관에 든다. 짐을 방에 두고 동네 구경에 나선다.

시골길을 걸어 가는데 유채꽃이 핀 밭 옆으로 가끔씩 보라색 작은 꽃이 달린 예쁜 작물이 사랑스럽다. 뭔지는 짐작이 가지 않는데... 저 멀리 커다랗게 보이는 미륵상까지 갈려고 택시에게 물으니 눈하나 깜짝 않고 30원이란다. 시냇가에서앉아 놀다가 여자들 빨래하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고 해질녘 되어서야 조금씩 외로움이 밀려 온다. 오늘이 설날인데 난 왜 이렇게 혼자서 이방을 떠돌고 있는가 하는 자괴감을 잊으려고 근처 구멍가게서 맥주를 마시며 저녁을 먹고 내친김에 바이주와 과일을 사들고 방으로 들어와 CDP에 스피커를 연결해서 노랠 따라 부르며 자작을 한다. 누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밖을 내다 보니 어떤 30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 하나가 자기는 3층에 묵고 있는데 심심해서 놀러 왔단다.

약간은 남루한 옷차림의 이 여자를 어떤 사람일까 짐작을 해 보지만 아리송하기는 매 한 가지.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도 그냥 웃기만 하고 술만 홀짝인다. 다만 여기가 고향은 아니란다. 자기 방에 가 보자고 해서 가 보니 제법 많은 옷들이 벽에 걸려 있고, 작은 트렁트 하나. 거기서 여자가 사온 맥주를 마시고 나선 “우리 어느 방에서 잘까?” 라고 물어 온다.

당연히 내 방에서 자자고 했다. 내 방엔 적어도 더운 물은 나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