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리라(香据里拉),이상향을 뜻하는데, 그만큼 원시에도 가깝고 아름다운 세상이란 말이 아니겠는가?
거기 가면 더친쪽에서 바라다 보이는 메이리 설산도 볼 수 있다고 한다.
티베탄들의 경외의 대상인 그 설산이 몇천 km를 돌아서 누지앙쪽에서 바라다볼 생각을하니 가슴이 뛴
다.빵차(우리의 다마스쯤되는 소형 밴)를 타고 1시간 반쯤 가니 드디어 멀리서 설산 하나가 우뚝 섰
다. 운전사에게 저게 메이리 쉐이산이냐고 물으니, 그냥 `쉐이샨(雪山)'이란다.
평탄한 길을 갈땐 ��이 내리쬐더니 좁은 골짜기로 들어서니 갑자기 짙은 안개가 드리워진다.
아랠 보니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있고, 불쑥 불쑥 나타나는 야크와 양떼,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운전
사는 익숙한듯 안개길을 헤쳐 나가는데, 오금이 저려 밖을 내다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삥중러에 도착하니 조그만 소읍.
휘돌아 나가는 누지앙 강가를 따라 동네가 형성되어 있고, 진 소재지는 표고 300m쯤의 언덕위에 상가
와 관청이-관청이랄것도 없지만-줄지어 있다.
멀리 협곡 건너에 우리의 하회마을 처럼 예쁜 동네가 있어 그리로 가보기로 하는데, 거리가 4km나 된
단다. 그냥 조그만 강 하나를 건너면 되는데, 빤히 보이는 마을을 다리 있는데까지 돌아서 간다니 기
가 차다. 나는 계곡으로 내려가서 강을 건너자고 했는데, 그는 막무가내로 길을 따라 가잔다.
내려갈땐 몰라도 올라갈 일이 걱정이었으리라...
산보삼아 한 시간쯤 걸으니 제법 큰 학교가 있는 동네까지 도달했다
.
동네 가게서 요깃거릴 사고 50원짜릴 내밀었더니, 거스럼이 없다고 난리다. 어쩌랴? 6원어치 군것질
하고 잘못하면 50원 날리기 생겼지만, 누가 이 깡촌에서 거스럼을 만들 수 있으랴?

동네 규모도 제법 크고 의외로 교회까지 있는걸 보고 저으기 놀랐지만 론리에 의하면 여기는 벌써
1800년대 말에 서구 사람이 들어왔었고, 카톨릭까지도 전파시켰다고 한다.
이리로 오던 사람들이 비행기가 추락해 길을 잃고 겨우 살아났는데, 거기서 그들이 인류의 이상향을
보았다고 이 부근이 `샹그리라'로 불린다고 한다.-아직도 그 지점이 어디인가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
좀 지루하겠지만 샹그리라에 관한 글을 읽어보면;
샹그리-라(Shangri-la)라는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33년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톤 (James Hilton
1990~1945)이 그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다.
이 아련하고 신비스러운 픽션 소설은 지난 69년 동안 모든 동서양의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관심거
였으며 또 "파라다이스"의 대명사로 쓰여 왔다. 저 히말라야산맥 너머 사람이 쉽게 찾아 갈 수 없는
어느 곳에 몇 백살이 넘도록 건강하게 미움과 다툼이 없이 오염되지 않은 땅에서 영생할 수 있는 곳
이 바로 "샹그리-라"라고 믿어 왔다. 이 "잃어버린 지평선"이 출판된 이래 중국 대륙은 곧 중국공산
당과 국민당간의 제1차 내전에 돌입하였고 대일 전쟁과 제2차 대전으로 전 세계가 전화에 휩싸임으로
서 히말라야산맥 동쪽의 골륜 산맥의 설산에 둘러싸여 있다는 샹그리라-라는 우리 인간이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는 상상의 이상향으로 여겨 왔다. 그러므로 소설 속의 샹그리-라는 한 홍콩의 호텔 업자
에 의하여 동남아지방에서 대표적인 호텔 이름으로 자리잡고 있었지만 제임스 힐톤의 잃어버린 지평
선을 읽은 사람 이외에는 샹그리-라라는 그 호텔 이름의 뜻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샹그리-라의 말뜻은 티베트 말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중국어로는 香格里拉이라고 쓰는
데 제임스 힐톤이 그의 소설에서 이 단어를 사원 이름으로 쓴 것은 1930년대의 영국과 불란서 그리
고 미국의 탐험가 들의 기록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짐작이 된다. 중국의 윈난성과 티베트 자치주
의 경계를 이루는 곳의 높은 산들은 에베레스트산에 비하여 그리 높지 않은 해발 5000m~7000m 사이
의 사철 눈이 쌓여 있는 설산들이지만 그 밑에는 넓은 고원들이 끝없이 펼쳐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탐험대들에 의하여 정복되지 않은 설산이 많고 가지각색의 전설이 어려 있고 자연
풍경이아름다운 것은 물론 티베트족을 주측으로 여러 민족들이 어울려 사는 지방이다. 이 중에서도
티베트의 불교 는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 풍습과 함께 더 없이 신비롭고 서구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
려운 면들이 많다. 더구
나 중국공산당이 집권한 이후로 1980년대까지는 외국 사람들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샹
그리-라는 신비스러운 곳이 이 지상에는 없는 상상 속의 이상향으로 여겨왔다.
1980년대 이후 중국이 개혁 개방 정책과 더불어 차츰 중국 대륙을 여행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면
서 샹그리-라는 차츰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티베트 지역은 특별한 허가 없이 오지를 자유
롭게 탐험 할 수가 없었다. 최근 유럽 탐험가들과 중국의 역사가 및 탐험가들이 샹그리-라를 탐험하
기 위하여 탐사에 나섰지만 본격적인 답사는 1996년 12월 윈나성(雲南省) 정부에서 조사단을 구성하
고 여러 역사 학자들도 조사 사업에 동참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1997년 9월 14일 윈난성 부성장 다이광루(戴光祿)씨가 정식 기자 회견을 갖고 샹그리-라는 윈
난성 디칭장족 자치주(迪慶藏族自治州)의 종덴(中甸)이라고 발표하였다. 이 발표 후 미국의 타임지
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매스컴들이 반신반의하면서도 크게 보도하였다. 이 결과 수많은 샹그리-라 탐
험대들이 중국을 방문하였는데 지난해 2001년에는 130만 명이 이곳을 찾았으며 외국인이 50만 명을
훨씬 넘었다. 옛날 수많은 탐험가들이 네팔, 부탄, 인도 등으로 샹그리-라 답사를 떠났지만 전부 허
탕이었다. 윈난성 정부의 최근 주장으로는 종덴이야말로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샹그리-라의 지
형과 흡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들이 주장하는 중요한 근거로는 이 지방의 티베트 말의 방
언 "Shangh-la"(香格里拉)가 샹그리-라의 영어 발음으로 되었다는 것이고 이 곳에 티베트 라마교의
원형 사찰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 곳은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것과 같이
많은 종교가 종파간 다툼 없이 화목하게 지내고 있으며 각 종 식물과 아름다운 꽃들이 자연 환경과
신비롭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더욱이 1933년 영국의 여자 탐험가 류만경이 강장정속속(康藏
征續續)이라는 노트에서 이 지방을 3일 동안 여행한 기록을 남겼는데 이 지방의 풍경이 파라다이스
를 연상한다고 표현한 것을 예를 들면서 분명히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자연 풍경은 종덴(中
甸) 지역을 묘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종덴이라는 곳은 중국 홍군의 장정(長征)과도 인연이 아
주 깊은 곳이다. 중국 인민 해방군 원수인 허룡(賀龍)이 이끄는 장정 제2방면 군이 지금의 호남성 장
가계(張家界)에서 출발하여 유일한 행군로인 스촨성(四川省)의 시창(西昌)과 안순창(安順場)을 경유
하지 않고 이 샹그리-라 라고 불리우는 종덴으로 와서 4일간 주둔하였는데 티베트민족의 냉대로 식량
을 구하지 못하여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때가 1936년 5월 경이였는데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소설이 출판된 후 3년 뒤의 일이다. 제임스 힐톤이 "잃어버린 지평선"을 쓴 이후 70
년 가까이 되는 지금 그의 소설 속 티베트 불교 사원의 이름인 샹그리-라가 전 세계의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렇게 뿌리 깊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그도 예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중국 윈난성 정부에서
1997년 샹그리-라에 관한 신문 발표문을 공표한 이후 여기 저기서 샹그리-라 관광객을 모집하는가
하면 샹그리-라라는 이름에 매료된 유럽과 미국의 많은 관광객들과 탐험가들이 수 없이 몰려들기 시
작하였다. 이에 덩달아 중국 정부에서도 외국뿐만 아니라 중국 내 환경 애호가들과 역사가들의 반대
에도 불구하고 관광 지구로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급기야 지난 해 2001년 12월 17일 중국 정
부 국무원에서는 윈난성 디칭 티베트족 자치주의 종덴현을 샹그리-라 현으로 행정 구역 명칭 변경에
관한 비준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 다른 지방에서는 샹그리-라라는 명칭을 모든 분야에서 사용
하지 못하게 되였다. 윈난성의 서북 끝의 디칭티베트족 자치주는 티베트와 윈난성의 접경지대이다.
그리고 세계에서도 유명한 금사강(金沙江-양자강상류)이 저 멀리 칭하이성과 티베트 자치구 경계에
서 시작하여 이 지방을 통과할 뿐만 아니라 메콩강의 상류인 난창강(瀾滄江)이 금사강에서 얼마 떨어
지지 않은 곳으로 흐르고 있고 미얀마 사르빈강의 상류인 노강(怒江)이 나란히 흐르고 있어서 세계에
서 제일 긴 협곡이 있고 평균 해발5000m가 넘는 산봉우리는 사철 눈이 녹지 않는 설산들로 줄을 잇
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해발 3500m 넘는 고원에는 갖가지 이름 모를 꽃들이 피여 있고 전문 탐험대들
도 정복하지 못한
설산들은 가지각색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더욱이 신비스러운 티베트 불교와 어우러져 현대
인들에게 신비감을 한 층 더해 주고 있는 곳이다. 잃어버린 지평선"이 소설으로 출판된 이래 세상 사
람들의 마음속에만 간직되던 샹그리-라가 중국 윈난성의 한 지역의 현의 이름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세계인들과 청소년들에게서 꿈과 마음속의 샹그리-라를 잃어버리 할 우려가 있으며 또 중국 정부가
관광 사업을 위해 현대적인 레저시설을 건설하면서 환경을 파괴하고 오염되었을 때 상상의 지상 천
국 샹그리-라의 이미지를 과연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염려하는 인사들이 많다.
현재 샹그리-라현의 사람들은 그 지역 관광 개발에 대하여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고속도로와 호화
호텔을 건립하는 등 많은 청사진이 준비되고 있다.
오늘 마음속의 해와 달(티베트어) 샹그리-라를 꿈과 마음속의 지상 천국이 아닌 땅 위의 샹그리-라
로 정하고 관광을 위해 개발을 하고 전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들인다면 우리 마음속의 해와 달인 "잃
어버린 지평선"의 샹그리-라는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는지...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의 해와 달인 샹그리-라를 영원히 잊어버리는 것은 인류의 꿈을 잃어버
리는것 같아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짐을 면 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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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장의 역사와 특이한 풍습을 알겸, 좀더 깨끗한 화장실도 찾을겸 학교에 가니 학생들이 쉬는 시
간인지 운동장에서 놀고 있다가 우릴 호기심에 찬 눈으로 흘끔거린다.
화장실에 갔더니, 티엔나!(세상에나) 푸세식에 살인적인 악취, 게다가 칸 도 없이 뻥 뚫린 공간에 수
지않고 붕붕대는 파리떼...학교 화장실이 좀 더 깨끗할 거라는 우리의 짐작은 보기좋게 어긋나 버렸
다. 좀 더 쾌적한 환경의 야외화장실을 이용하기로 하고, 말없이 코를 쥐고 물러나다.
애들에게 영어선생을 찾으니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다고 했다.
이 학교가 규모가 커 보이는 것이 학생들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는가 보다.
침실엔 2층 침대가 줄지어 있고 꽤재재한 이불에 밥을 타 먹을때 쓰는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난간에
줄지어 있고 책상이나 다른 가구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잠만자는 방인가 보다.
영어선생도 없고, 양지에서 장기를 두고이는 선생들을 향해 갔더니 모두 쭈볏거리며 일어선다.
황급히 그냥 하던거 하라고 하니 다시금 자리에 앉고 한 사람이 우리가 앉을 의자와 차를 내 왔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니 북조선에서 왔냔단다. `한궈런'이라고 강조하자 하나 둘 질문이 쏟아진다.
그리고 우리의 옷차림과 카메라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장기를 가리키며 `한국에도 이런게 있다'고
하니 당장 한 판 두잔다. 사양하며 메이리 설산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아까 우리가 본 산이 맞단다.
더욱 놀라운것은 여기서 거기까진 40km가 채 안되는데, 말로 간다면 5일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강때문에 길을 돌고 길이 없어서 길을 내면서 가야하기 때문이란다.
체육선생인드한 사내가 애들을 한 부대 몰고왔다. 아마 애들을 동원해서 난을 캐러갔던듯 난이 몇촉
가지고 왔는데, 관심을 보이자 창고 문을 열고 100여개의 난초분을 보여주며 우리더러 하나 사란다.
가격을 물어보자 한 분에 500원이란다.지랄같은 소리하네...
학교를 나와 길을나서니, 저쪽 골짜기에서 100필은 되어 보임직한 한 무리의 말떼가 나타났는데, 등
엔 숯이 바리바리 실려있다.말떼를 모는 사람은 겨우 두 명, 걸음걸이가 굉장히 빠르다.
비탈진 동네로 들어가니 한 할머니가 베를 짜고 있다가 우리보고 들어오란다.
젊은 여자 하나가 우리의 막걸리 비슷한 술을 내 오더니 같이 마시잔다. 맛도 그냥 막걸리 맛인데,
원료가 옥수수인것 같다.화려한 원색의 옷감을 짜는데, 아마 리수족이나 좡족의 전통의상을 만드는
데 사용하나 보다. 꼬마 둘이 왔길래 악수를 청하자 부끄러운듯 황급히 달아난다.
다시 길을 나서서 논뜰로 오니 아까 말을 몰고왔던 사람들이 숯을 부리고 음식을 장만하고있다.
차량으로 따지자면 공영 주차장 쯤 될듯.동네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들은 3~4일쯤 되는 먼 산길
을 짐을 싣고 여기저기 다니는 `운수업자'라고 하며, 읍내인 삥중러에서 시멘트를 싣고 내일 다시 다
른곳으로 간다고 한다.현대판 `대상'이라는거다.
이럭저럭 시간이 흘러 돌아갈 시간이 되었기에 차에타고 `나는 현재 얼마나 문명화된 사회인인가, 그
리고 비록 초라하고 가난하지만 그들의 유유자적한 생활은 얼마나 여유로울까...'생각하며 꽁샨으로
돌아왔다.
박과 저녁을 먹고 쉬고 있으려니 밖에서 세차게 문을 두드린다.
놀라서 "어떤놈이야!" 하며 문을 여니, 이럴 수가! 뜻밖에도 박상서씨가 빙그레 웃고 서 있다.
오늘 그가 류쿠에서 꽁샨에 도착해서 호텔에 오니 프런트에서 한국인이 들었다고 해서 내 이름을 확
인하고는 다짜고짜 달려왔다는 그다. 이 이역만리서, 더구나 이 오지에서 그를 만날줄은 상상도 하자
못했는데, 이렇게 만날줄이야...
그는 현재 쿤밍에서 목재사업을 하고있는 40대 중반의 부산사람. 다리의 문사장집에서 두어번 만나
술도 한 잔씩 나눈 마도로스 출신의 정이 많은 사내이다. 특이하게도 20살 연하의 예쁜 북한여성과
결혼해서 사는데, 작년에 드디어 득남을 했단다.
조선족 통역을 내 보내고 우린 그동안 밀린 많은 얘길 나누었다. 우리가 두롱지앙에 못가게 되어서
내일 류쿠로 나갈거라니, 무슨 소리냐고 당장 이곳 현장(縣長)과 통화를 하더니 아무 걱정말고 차
도 수배해 놓았으니 자기랑 같이 가잔다.
드디어 소원성취, 만사형통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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